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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제연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3輯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65 - 10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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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 4개 목 지역 중 하나인 洪州는 충청도 서부 지역의 행정 거점이다. 어염이 풍부하고 농토가 넓어 사대부가 거처로 삼기를 원했던 곳이며, 바닷길을 이용한 외부와의 소통이 빠르고 상업이 발달하여 내륙 지역보다 개방적·진보적인 곳이라 알려져 왔다.
홍주의 문화상을 보여주는 몇 가지 근거 중 하나는 홍주의 書院이다. 충청도는 율곡 이이의 학맥을 이은 김장생, 김집 부자의 영향으로 기호학파의 근거지였으며 정치적으로 서인계의 텃밭이었고, 노소분기 이후에는 서인-노론계가 전반적으로 우세하였다. 특히 노론의 首院인 연산 遯巖書院, 청주 華陽書院을 중심으로 공주진관, 청주진관 소속 군현에 소재한 서원은 대체로 노론 색을 띠었다. 그런데 유독 홍주에는 惠學書院과 龍溪書院 등 소론계 사액서원이 있고, 홍주진관 소속 군현에 소론계와 남인계의 서원이 세워졌다.
홍주에는 두 서원 외에 성삼문을 제향한 魯恩書院이 있었다. 노은서원의 창건 세력은 당색을 초월했지만 노소분기 이후 노론의 지원을 받았다. 이는 노론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타 지역에서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원 간 갈등이 흔했고, 노론 정권하에서 비노론계 서원이 철액 또는 철폐되기까지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앙정계는 당쟁으로 요동치고 있었지만 홍주에서는 지역 내에 당파적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소론계 사액서원이 유지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두 서원의 제향인물이 李世龜(이광좌의 父)와 尹拯이라는 소론의 핵심 인사였다는 것이고, 둘째, 이세구와 윤증이 생전에 홍주에 머물며 재지사족의 유풍을 진작시켰으며, 셋째, 홍주 사족사회가 애초에 노론이 지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주의 서원은 모두 고종 대까지 존속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홍주 재지사족의 동향
Ⅲ. 惠學書院과 龍溪書院 건립
Ⅳ. 노소분기 후 서원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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