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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秀日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56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295 - 347 (53page)
DOI
10.15299/jk.2015.8.56.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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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은 미소분할점령으로 열린 8·15 해방을 새로운 민족적 위기로 실감하였다. 38이북의 소련군 점령은 ‘동구화’의 징후였고, 강력한 세를 발휘했던 건준-인공의 출범은 남한마저 적화로 몰아넣을 긴박한 사태였다. 독립은 결코 좌익정권으로 시작할 수 없기에, 비상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병옥은 민족 총역량을 반공민주국가건설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미군 입성 한 달이 지난 1945년 10월 중순 조병옥은 군정청 한국인 경찰책임자로 발탁되었다. 일제경찰에 복무했던 한국인 경찰들을 주축으로 재빨리 경찰력의 재건 강화에 나섰다. 이들은 직업적 친일파가 아닌 생계형 친일파로 별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친일파는 가벼운 피부병이고 공산주의는 치명적 심장병정도로 생각하였으며, 일제경찰기구와 요원 그리고 사악한 관행이 반공의 보호망 속에서 재생되었다.
제1차 미소공위의 휴회 후 중간파가 한민당-보수세력의 새로운 수권경쟁 상대로 급부상했고, 조병옥은 좌우합작-중간파를 또 다른 반공의 적으로 몰아갔다. 군정당국의 과도정부의 수립은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중간파 정부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그 타개방안으로 조병옥은 「남조선시국대책요강」(1947년 10월)을 작성하였다. 핵심은 군정부의 육성 강화에 기초한 남한 반공정부수립이었다. 친소=반미=반군정=반애국적 세력과 이념을 철저하게 제거하여 남북통일의 모체로 남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정화’된 반공국가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일제의 전시지배체제 구조와 동원경험 속에서 쉽게 구축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적 제 권리가 일정하게 유보될 수밖에 없었고, 반공이 건전한 자유민주주의=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가지 못했다. 결국 해방직후 보수우익은 자신의 비판적 친구(=중도파)를 배제해버림으로써 이후 이 땅에는 극도의 이념적 사상적 갈등과 소화 불량에 빠져들어 갔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8 · 15 해방의 실감 : 공아론 · 적색공포의 확산
3. 조기분단의 정치지형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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