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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건곤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4집
발행연도
2015.10
수록면
138 - 167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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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시대의 팔경문학의 전개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고려 문인들이 중국의 소상팔경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차·화운하는 한편, 고려의 특정지역이나 공간을 팔경으로 정하고 문학활동을 영위한 과정을 저작경위와 영향관계에 주목하여 고찰하였다. 특히 소상팔경시와 한국 팔경시, 八景詩와 八景詞로 나누어 그 전개과정을 파악하고, 기존연구의 몇 가지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소상팔경시와 소상팔경도가 제작된 것은 명종이 신하들에게 지시를 하면서부터이다. 李仁老의 한시 〈宋迪八景圖〉가 그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이것은 후대에 지어진 여러 팔경시의 전범이 되었다. 이어서 李奎報가 6편, 陳澕가 1편의 소상팔경시를 남기고 있는데, 당시 관료·문인·승려들 사이에 소상팔경시를 짓고 차운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소상팔경시가 그다지 지어지지 않았다. 李齊賢이 지은 1편이 남아있을 뿐이다. 대신 李穡은 소상팔경이 아닌 중국의 다른 승경을 대상으로 〈東吳八詠〉과 〈鳳山十二詠〉을 지었다. 곧 대상과 형식이 다양해진 것이다.
한편 고려 문인들은 소상팔경을 한국적으로 변용하여 한국 팔경시를 창작하였다. 金克己는 강릉의 8곳을 유람하며 최초의 한국 팔경시 〈江陵八景〉을 남겼다. 실경을 소표제로 삼고 경관과 관련 있는 역사나 전설을 원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이규보는 2편의 한국 팔경시를 지었지만, 모두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지어준 것이다. 고려 후기에는 한국 팔경시가 여러 문인들에 의해 성행하였다. 문단의 종주였던 이제현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가 원나라에 머물면서 송도를 그리워하며 〈憶松都八詠〉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安軸은 관동지방의 관리로 나갔다가 〈三陟西樓八詠〉을 지었고, 李穀과 李達衷이 그 시에 차운하였다. 또 안축은 경상도의 여덟 경치를 〈東南八景詩〉로 읊었다. 이색은 자신의 고향을 대상으로 〈韓山八詠〉을 지어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편, 간신 廉興邦을 위해 〈金沙八詠〉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고려 후기 팔경문학의 한 특징으로 寫景詞의 창작을 들 수 있다. 이제현이 원나라 문사들과 교유하며 詞를 익혀 독보적인 솜씨를 보였는데, 巫山一段雲으로 〈소상팔경사〉와 〈송도팔경사〉를 지었다. 그의 영향 아래 鄭誧가 〈蔚州八景〉, 陳義貴가 〈淸安八景〉, 安魯生이 〈寧海十二詠〉 등을 차례로 지었다. 모두 귀양지에서의 閑適한 삶을 무산일단운으로 읊은 것이다. 무산일단운이 유행한 것은 이제현에 의해 새로 전해진 詞調인데다, 오언과 칠언의 조합으로 상대적으로 짓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한편 고려시대 팔경문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기존연구의 몇 가지 오류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특히 진화의 소상팔경시 저작시기, 김극기의 문학사적 위치, 虔州八境 및 東吳八景의 소상팔경과의 관계, 봉산십이경의 대상 등에 대해서는 재고할 여지가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高麗 中期의 八景詩
Ⅲ. 高麗 後期의 八景詩와 詞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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