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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岩方久彦 (전남대학교(여수))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2집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263 - 305 (43page)
DOI
10.18496/kjhr.2015.12.5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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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역지통신을 조선멸시의 관점에서 벗어나 ‘御威光’의 관점으로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나카이 치쿠잔(中井竹山),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의 사상을 재검토했다. ‘고이코’의 관점에서 보면, 아라이 하쿠세키의 역지는 에도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분쟁을 회피하려는 ‘江戶入城停止論’이었고, 나카이 치쿠잔의 역지는 통신사의 에도입성만은 막으려는 ‘에도입성정지론’이었다. 그리고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에 이르러 역지는 기근으로 황폐해진 에도를 통신사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에도입성정지론’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므로 통설과는 달리 바쿠후가 역지통신을 추진한 것은 조선멸시도 재정적인 이유도 아니라 ‘고이코’ 때문이었다. 바쿠후는 ‘고이코’를 지키는 목적으로, 에도의 조선외교 기능과 역지를 맞바꾼 것이다.
문제는 바쿠후에는 역지통신을 추진할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조선이 역지를 허락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어려운 교섭 끝에 조선이 역지를 거부하자, 사다노부가 계획한 대마도 역지통신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사다노부가 물러나도, 바쿠후의 역지 추진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제 대마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역지를 성사할 수밖에 없었다. 대마도가 선택한 것은 역관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고, 역관 朴俊漢과 손을 잡았다. 박준한의 노력으로 역지는 처음으로 조정에서 논의되었지만, 정조는 ‘역지불허론’으로 역지를 거부하고 말았다. 그리고 통신사의 파송 시기를 당분간 연기할 것을 원했다. 정조는 ‘에도통신’을 원하면서 연기도 원하는 일견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정조의 이러한 태도는 통신사 예단 확보가 어려운 재정 상태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조의 역지통신 거부는 명분론적인 이유와 함께 통신사의 파송 시기는 자신이 조율하겠다는 정략이었다. 통설과는 달리 조선이 무기력하게 역지 교섭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지통신은 조선의 실리 외교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지금까지 조선멸시의 그늘에서 가려진 조선의 외교정책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에도통신’(江戶通信)의 목적
3. ‘고이코’(御威光)와 역지통신론의 전개
4. ‘에도통신’ 논쟁과 정조의 ‘역지불허론’
5. 결론
참고문헌
【日文抄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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