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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재운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0輯
발행연도
2018.3
수록면
45 - 7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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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는 5道라는 주요 교통로가 있었다. 즉 日本道, 新羅道, 朝貢道, 營州道, 契丹道가 그것이다. 5도 가운데 조공도와 영주도는 당과의 관계에서, 거란도는 거란과, 일본도는 일본, 그리고 신라도는 신라와의 연관을 가진다. 조공도에 대한 기록은 『新唐書』 地理志 羈縻州條 말미에 언급된 道里記에 있다. 이에 따르면 이 교통로는 발해의 舊國, 中京, 東京, 上京에서 떠나 神州에 이르고, 신주에서 다시 배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남행하여 泊汋口에 이르렀다가 그곳에서 다시 압록강 어귀를 나가 요동반도, 발해해협을 거쳐 登州에 이른 후 육로로 당나라 서울 長安으로 가는 길이다. 조공도의 명칭에 대해, 조공도가 ‘발해국’을 ‘말갈국’ 또는 ‘발해군’이라 부르던 것과 같이 당에서 일방적으로 부르던 호칭일 것으로 보아서, ‘압록도’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압록도의 여정 가운데 해로구간은 신라 견당사들이 비교적 초기에 이용하던 북부 연안항로의 일부와 일치함을 알 수가 있었다. 즉 압록강구에서 서남방으로 요동반도 남쪽 연안을 따라 항해하여 石城島 · 長山群島를 거쳐 지금의 旅大市 앞바다에 도착한 후, 서남쪽으로 좀더 나아가면 旅順 서남방에 있는 老鐵山 아래의 都里鎭에 도착할 수 있다. 都里鎭에서 다시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廟島列島의 隍城島 · 龜欽島 · 長山島 등의 섬을 거쳐 唐尺으로 약 300리를 항해하면 당의 등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수로는 神州에서 압록강을 이용하여 丸都 · 泊汋口를 거쳐 황해로 들어가는 구간이다. 神州는 서경압록부의 소재지인 臨江이고, 환도는 고구려의 옛 도읍인 集安이다. 박작구는 虎山山城이 발견된 靉河河口 부근이 유력하였음을 알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육로구간은 神州(지금의 臨江市)에서 동북 육로로 바꾸어, 顯州를 거쳐 上京龍泉府에 이르는 여정이다. 신주에서 현주에 이르는 육로는, 발해고성의 분포상황을 통해 볼 때 신주(지금의 임강시)에서 응당 동북으로 가서 지금의 撫松縣城에 이른 뒤에, 안도현성에서 서북으로 가서 永慶鄕을 거쳐 柳樹屯에 이르고, 유수둔에서 富你河를 따라 서북으로 가서 大浦柴河鎭에 이른 뒤에 여기서 북쪽으로 가서 목단강을 따라 敦化(舊國)에 이른다. 안도현 영경향 유수둔에서 古洞河를 따라 동북으로 가서 萬寶古城을 지나 新合鄕에 이르고, 여기서 古洞河를 따라 동남쪽으로 간 이후에 해란강의 지류를 따라 臥龍村과 西城鎭 사이의 獐項古城(발해성)을 거치고, 또 동쪽으로 가서 지금의 화룡시 서고성의 발해 현주 즉 중경현덕부에 도달하였다. 중경에서 상경에 이르는 길은 海蘭江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延吉市(즉 龍井)에 이르는데 그곳에 발해고성과 무덤 떼가 있다. 지금의 연길현성에서 동북으로 가면 연길시에 도달한다. 연길시에서 북쪽으로 가서 嘎呀河 유역의 발해고성을 따라가면 上京에 도착하였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러한 발해의 압록도는 5道로 대표되는 기간도로망을 역참을 통해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참은 크게 馬站과, 水站 · 狗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압록도의 육로구간은 마참, 수로 구간은 수참을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마참과 수참의 驛館은 육로와 수로구간에 있는 둘레 500m 정도의 소형성터로 추정된다. 이러한 소형성터는 부근에 발해 마을유적이나 무덤떼도 있고, 성터간의 거리가 15∼50km이다. 성터 부근의 마을 유적은 역참과 관련된 사람들이 거주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압록도는 발해 사절단의 통로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면, 무역품의 수송 루트라는 점에서 경제적인 면, 渤唐간의 문화교류의 길이라는 점에서 문화적인 면 등의 여러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가 있다. 나아가 수상 · 육상 · 해상 교통로를 아우르는 네트워크의 거점으로서,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동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육로구간
Ⅲ. 수로와 해로구간
Ⅳ. 발해 사신 여정의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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