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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형수 (대전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86輯
발행연도
2018.4
수록면
103 - 13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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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에 對蒙抗爭이 개시된 이래 몽골은 고려에 대해 복속의 증표로 여러 가지 의무 조항과 함께 토르각(turγaγ, 禿魯花)이라고 하는 質子를 줄곧 강요하였다. 그로 인해 고려는 강화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왕족과 관인의 子弟를 선발하여 몽골에 볼모로 보냈으며, 전쟁이 끝나고 元의 정치적 간섭을 받는 시기에도 수십 년간 그들의 요구에 따라 부정기적인 인질 파송을 지속적으로 치러야만 했다. 고려의 토르각은 고위관료의 자제들로서 혹자는 대물림하여 충원되기도 하였는데, 원 황제의 친위조직인 케식(kešig, 怯薛)에 소속되어 宮廷에서 宿衛를 담당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귀국하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원은 고려 관인층에 대해 구속 수단을 확보하고 親元 성향을 가진 인물을 육성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14세기 초반부터는 麗元關係가 심화되면서 고려 관인층 가운데 토르각을 거치지 않고 개별적인 사유로 인하여 원의 숙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先代가 원에 정착하여 출세한 것이 배경으로 작용하거나 고려 국왕과 원 관료의 추천 및 원 황실의 직접 발탁 등을 통해서 숙위에 들어갔으며, 후일 원 조정에 출사하여 대략 5~7품 범위의 중앙관직을 初任職으로 받았고 3~4품까지 승진하는 등 중급관료로서 활동한 양상이 확인된다.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고려 관인층의 원도숙위는 당시 고려와 원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역대 중국 왕조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인적 교류의 一樣相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관인 자제의 質子(禿魯花) 送納과 숙위
Ⅲ. 개별적 숙위 참여의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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