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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경후 (동국대)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1권 제1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235 - 261 (27page)
DOI
10.17068/lhc.2018.05.21.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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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불교는 주자성리학의 이념화와 불교탄압정책에 의해 쇠퇴했다. 불교계 내부의 오랜 수행전통 역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할 뿐 선과 교학의 대립이 수행자 사이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청허 휴정은 이와 같은 불교계의 수행양상과 대립을 저술을 통해 비판하고 사상과 수행의 근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는 선 우위의 교학 통합을 주장했고 선의 지침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청허의 이와 같은 선교관과 수행체계에 대한 기초 확립은 그의 제자 편양 언기에 의해 조선후기 불교계의 정체성으로 확립되었다. 편양 언기는 우선 스승 청허의 선사상과 임제종 법통의 언급에 따라 태고 보우의 법통을 수립하였다. 편양 언기는 청허 휴정과 사명 유정의 비문, 청허집의 서문을 다시 찬술하여 태고 법통을 당시 불교계에 확고하게 선언하였다. 편양 언기가 강조한 선의 경절문은 언어나 문자를 여의고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결실을 얻는 최고의 교법이자 수행법으로 인식하였다. 교학은 선문의 최하근기를 위해 종(宗)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선교가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 구분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편양 언기는 스승 청허 휴정과 같이 선주교종(禪主敎從)의 수행체계를 계승하였다. 조선후기는 염불 역시 수행체계로 편입시켰다. 청허 휴정은 염불은 마음과 입이 하나가 되어 부처를 생각하고 그 명호를 불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기존의 구원만을 바라는 타력신앙과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청허 휴정과 편양 언기는 선학 · 교학 · 염불이라는 삼문(三門)에 대한 인식과 수행체계의 근간을 마련하여 조선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兩亂 이후 불교계의 정체성 확립의 배경
3. 兩亂 이후 불교계의 法統 확립과 鞭羊 彦機
4. 청허 휴정의 三門定立과 鞭羊 彦機의 불교계 유포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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