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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옥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49호
발행연도
2018.4
수록면
141 - 17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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霞谷鄭齊斗(1649~1736)는 주자학이 주도하고 있던 조선후기 사회에 양명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되어 왔다. 그 결과 그의 가계를 비롯한 교유관계 조차도 양명학과 관련하여 설명하려는 경향성을 띄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정제두의 인적 네트워크에 대해서 살펴보고 양명학적 계보가 형성되는지 검증해보고자 한다.
정제두 이전 가문은 정유성의 현달과 함께 서인 핵심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정제현이 효종의 부마가 된 것은 상징적인 모습이다. 정유성의 장인은 이구함이며, 정창징의 장인은 홍익한이며, 정상징의 장인은 이기조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가문은 서인·남인과 혼맥으로 모두 연결된다.
한편 정창징과 정상징의 사위는 대체로 서인-노론으로 분류할 수 있고, 사위들 가운데 이세백과 민진주가 정치적·학문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때는 노소분당 이전이기 때문에 이 가문은 서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묘도문자 찬자를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정유성의 묘도문자는 송시열·정제두·이의현이 찬하였고, 정창징의 묘도 문자는 송시열·김수항이 찬하였으며, 정제현의 묘도문자는 서명응·정제두·이경석·김수항이 찬하였다. 이는 정유성 가문이 노론과 소론을 모두 아우르는 서인 핵심 가문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제두 가계는 정제두의 학문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소론 핵심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정제두의 장인은 윤홍거·서한주이며, 정후일의 장인은 이단상·유춘양이며, 정지윤의 장인은 이징성이다. 윤홍거·서한주는 서인이며, 이단상은 서인-노론으로 볼 수 있고, 이징성은 소론이다. 이를 통해 보면 정후일이 혼인할 때까지만 해도 정제두 가계는 노론과 소론을 모두 아우르는 서인 가계였고, 이후 소론화 경향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가계에서 받아들인 사위를 보면 소론화 경향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정제두의 사위는 이징성이며, 정후일의 사위는 이광명·이경호·임달호·신대우·이영익이다. 이들은 모두 소론이다. 다만, 이광명·이영익은 이진유 가문의 인물로 준소계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경호는 완소계로 분류할 수 있다. 정제두가 소론의 산림학자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후 정제두 가계가 준소계와 완소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소론 핵심 가문이 된 것이다. 묘도문자 찬자를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정상징의 묘도문자는 윤증·정제두가 찬하였고, 정제두의 신도비명은 신대우가 찬하였으며, 정후일의 묘도문자는 윤동도·이충익이 찬하였다. 이 가계의 묘도문자 찬자 역시 모두 소론이며, 윤동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인척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정제두의 인적네트워크는 “서인+남인→서인(노론+소론)→소론(완소+준소)”의 경향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요약문】
I. 머리말
II. 정제두 이전 가문의 인적네트워크
III. 정제두 가계의 인적네트워크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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