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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수환 (한국학)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6輯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51 - 80 (30page)
DOI
10.31335/HPTS.2018.08.6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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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산신씨 신잡 종가에 전하고 있는 고문서를 이용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 개인과 가문의 전란 대응 실태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이 가문에 전하고 있는 509점의 고문서 중 경제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매매명문과 분재기 74점을 분석했다.
평산신씨 신잡 계열은 조선 16세기까지 한양에서 벼슬을 지속한 고위 관료가문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신립을 비롯하여 신잡의 동생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평산신씨 가문은 위기에 직면했다. 왜란 후에는 광해군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았으며, 비록 인조반정으로 위상이 복구 되었으나 임란 이전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곧 이은 병자호란으로 인해 신잡 종가 계열은 왜란 이전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지 못했다.
평산신씨 신잡 종가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핵심관료가문으로, 임란 이전에 작성된 분재기에는 전국에 소유 노비가 산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왜란으로 노비는 물론 토지와 같은 중요 재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전란 중에도 매매와 분재를 실시하여 경제활동을 일상적으로 유지했음에도 임란 직후 산실된 가산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용이하지 않았다. 급기야 병자호란 발발을 계기로 재산을 복구할 수 있는 문서들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게 되었다.
평산신씨 신잡 종가는 조선전기에 고위관료를 많이 배출한 대표적 양반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란은 이 가문의 정치적 위상은 물론 토지와 노비 같은 중요한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근기사족 평산신씨
Ⅲ. 임진왜란과 家産관리
Ⅳ. 병자호란과 가산복구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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