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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관식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9輯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90 - 140 (51page)
DOI
10.31335/HPTS.2019.08.6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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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은 1930년대 초 중국의 사회변화를 목도하며 좌파 문학 운동을 경험하고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수용했다. 그는 사상 대립의 축으로 신문화운동 이후 보수화된 국고정리운동 그룹과 함께 국민정부를 설정했다. 김태준은 두차례의 중국 사상문화 체험에서 사회 현실을 통제하고 있는 국민정부의 실상을 확인하고, 대중과 결합되지 않은 국가 정책의 허상을 파악했다. 중국의 혁명적 변화 가능성을 기대했던 김태준은 국민정부의 보수적인 학술 문화정책과 사상통제에 실망했으며 이러한 인식은 조선학 연구에도 반영되었다.
1933년 김태준은 조선학의 ‘국학적’ 연구를 비판하고 ‘사회학적’ 연구를 지향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때 ‘국학적’ 연구에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국학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중국의 국고정리운동과 파쇼적인 국민정부의 국사 정책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민족주의 계열의 조선학은 조선 연구의 대립축으로 설정되었다. 김태준은 조선학운동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았고,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을 절대시하면서도 연구 방법론의 단계적 발전을 부정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은 ‘사회학적’ 연구로 심화되었다. 김태준은 세계사적 발전 법칙에 의거한 고전의 역사성 탐구와 과거의 재인식을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을 부정하는 주류 마르크스주의자의 정체적 조선 연구에 대한 대립적 인식은 명확하지 않았다.
김태준은 씨족사회에 대한 연구에서 역사발전의 동력에 대하여 기술의 진보를 통한 생산력의 발전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씨족사회의 해체기에 나타난 ‘지배자의 철학’이 봉건사회의 해체와 함께 파탄되었음을 증명하며 이를 복원시키려 하는 민족주의 계열을 비판했다. 그리고 역사상 민란을 검토하며 새로운 계급적 주체 형성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무산대중의 적극성을 강조하고 혁명적 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한 3.1운동사 이해는 이러한 인식의 정점이었다. 조선학의 ‘국학적’ 연구를 배격하고 ‘사회학적’ 연구의 내부 분화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주체적인 부르주아의 형성을 간과했던 김태준의 행보는 해방 이후 무산계급의 영도권을 주장하는 남로당을 향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마르크스주의 수용과 중국 사상문화 체험
Ⅲ. 비판적 조선학 연구의 전개와 역사동력 인식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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