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권 (문화재청)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55輯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41 - 76 (36page)
DOI
10.37981/hjhrisu.2019.08.55.4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에서는 조선 지식인과 翁方綱간에 이루어진 한중교류의 동기와 조건, 그리고 기반을 포함한 환경을 추적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조선과 청의 상대국에 대한 외교상대우, 乾隆帝가 1780년대 초에 조치한 외국 사신의 공식 행사 참여 확대, 排淸사상을 가진 조선 지식인이 만주족 관료보다는 한족 지식인과 교유를 지속한 점 등, 외부 환경을 검토하였다. 아울러 조선인의 春秋大義와 한족 지식인층의 ‘문명’, ‘군자’, ‘예의’라는 조선에 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중 지식인이 공식교류에서 사적교류로 나아가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상기 조건만으로는 조선의 翁方綱서풍 수용을 발생시키기는 힘들다. 이는 1785년에 있었던 강세황과 翁方綱의 교유가 일회성으로 끝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좀 더 직접적인 조건과 계기는 조선 내부의 기제 변화인데, 송학 중심의 漢宋折衷論을 비롯해 道文分離論의 발생에 따른 蘇軾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조선 지식인은 한중교류에서 자신들과 유사한 사고를 가진 청 학자와 교유하기를 원했는데, 翁方綱은 가장 적합한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1790년에 있었던 박제가 및 유득공과 翁方綱간의 교유는 시작 지점에 해당한다.
19세기의 김정희는 북학파 등이 남긴 성과를 기반으로 한중교류를 확대해 갔다. 그와 翁方綱사이의 교유는 조선에서 翁方綱의 존재를 확실하게 심어 놓았으며, 19세기의 서단에 변화를 유발시켰다. 그러나 근기남인과 노론 내에는 翁體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표출되었다. 이들은 고전적인 서풍과 조선 전통의 서풍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다른 시선은 옹체가 조선에 유입되는 기세는 강력했으나 서단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예증한다.

목차

국문초록
1. 사고의 전환
2. 공식교류에서 私交로 변화
3. 김정희의 翁體 수용
4. 상반된 시선
5. 과제: 옹체의 범위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001-000972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