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철학연구회 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 제87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61 - 190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孟子󰡕에서 文王의 發政施仁과 같은 王政을 펼치는 곳이라고 설명한 ‘明堂’은, 殷周交替期에도 實在했던 것이지만, 春秋時代 이전까지는 그 용어의 사용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戰國時代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五行 및 時令思想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明堂은 布政과 朝禮 祭禮 養老 敎化를 펼치는 正殿의 기능을 했던 군주의 포괄적인 정치활동 장소로서, 宗廟 太廟 廟堂 太室 등으로도 불린다. 그러한 명당⋅종묘제도는 戰國 末을 거치면서 완전히 계승되지 못하였고, 漢初에 와서야 막연한 상상과 구전으로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채 단편적인 부분만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漢나라 때부터 明堂은 布政 및 祭禮 시설로, 宗廟는 先君을 위한 제례 시설로, 그 두 가지를 별개의 건축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殷周交替期 즈음에 조성된 辟雍은 周나라 천자가 귀족자제들을 위해 설립한 學宮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했던 곳이다. 辟雍을 중심으로 강물이 ‘둥근 옥[璧]’처럼 環抱된 모습이라는 그곳의 자연 환경은, 마치 그곳이 천연적인 요새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벽옹은 왕이 거처하는 특정한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거나, 그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왕의 통치 장소이다. 辟雍 안에는 靈臺를 함께 조성하였다. 󰡔白虎通義󰡕⋅󰡔大戴禮記󰡕⋅󰡔蔡中郞集󰡕 등에서 논한 것을 종합하면, 靈臺가 곧 明堂이며 동시에 廟堂이 된다. 바로 그곳에서 王이 布政을 행하였다. 그 때문에 明堂을 廟堂 위 북쪽에 위치한 太室인 路寢을 가리키기도 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