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8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81 - 208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경은 일본과 여진족의 침략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일본의 침략은 어린 시절 간접경험에 그친 것이었지만, 여진족의 침략은 국가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점은 그의 대일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경의 대일인식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점은 일본의 도움으로 여진족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는 명 - 조선 - 일본 - 여진족이라는 질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인식했다. 반면 여진족의 군사력은 대단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일본의 도움으로 여진족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화이론에 입각한 조선의 전통적 대일인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1643년 일본사행 중 조경은 일본의 민속이나 민족성, 조선을 침략한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쓰시마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의 원수를 갚아 준 것으로 인식했고, 일본의 문물이 발전한 사실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도쿠가와 바쿠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일본이 조선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었다. 즉 일본사행을 통해 그는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정한 변화를 보였던 것이다. 조경이 일본사행을 통해 대일인식에 변화를 보였다고 해서, 그가 일본을 조선과 대등한 국가로 여겼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조선은 중국과 견줄 수 있는 문화국이었지만, 일본은 조선보다 하위에 위치한 국가였다. 즉 사행을 통해 그의 일본관은 일정한 변화를 보였지만, 여전히 그는 당시 세계를 명 - 조선 - 일본 - 여진족으로 위치지웠던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