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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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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9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451 - 48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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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한국역사에 보기드문 여성삼대(女性三代)로 이어진 사임당(師任堂)의 태교(胎敎)로 천재성이 일찍 드러났으며 가장 인간다운 바탕을 타고 났다. 세 살 때엔 말을 배우면서 글을 익혔고, 다섯 살 때에 천부적인 효자임이 만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6∼7세에 이르면서 사서(四書) 등 유교경전을 모친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지도받아 이미 이때에 한문의 문리가 텃다. 7세때에 이웃의 친척이요, 권세가인 진복창을 ‘정의(正義)’에 입각한 의리정신으로 심하게 비판한 순 한문의 『진복창전(陳復昌傳)』을 지어냈다. 그 문장력으로 ‘화석정시(花石亭詩)’도 지었다. 9세에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읽고 『봉부모형제도(奉父母兄弟圖)』도 그려서 맹세하였다. 11세때에 부친 이원수(李元秀)의 병(病)이 위독했을 때에 외조부(外祖父) 사당에 들어가서 신령(神靈)에게 기도드렸다. 늙고 불쌍한 아버지 목숨을 젊고 재주있는 자신의 목숨으로 바꿔가기 바란다고 간청하면서 기도 드렷다. ‘지성감신(至誠感神)’이란 말이 있듯이 율곡의 효성에 감동한 신령이 역력히 나타타서 하는 말이 “장한 아들을 두었소. 이 아이는 장차 ‘동방의 대유학자(大儒學者)’가 되니, 잘 길러야 하오. 단, 내일 아침에 날이 새면 ‘王’ 변에 ‘耳’ 자(字)를 넣어서 ‘이(珥)’자로 이름(名)을 지으시오.” 과연 그 이튿날에 그대로 실행 하였더니 씻은 듯이 부친의 병(病)은 나았다. 율곡가(栗谷家)의 가족들은 신령에게 감사드리고 이이(李珥)가 유학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대성(大成)할 날이 올 것이라고 그 날을 기다리면서 희망찬 나날을 보냈다. 율곡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13세에 ‘진사초시’에 장원급제 하였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율곡은 관직보다는 학문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나 16세 때에 평소에 우상처럼 생각했고 유학(儒學)을 가르쳐주고 따뜻한 마음(心)을 심어주고 정성 함양에 도움을 준 사임당이 돌연히 별세한다. 삼년상(三年喪-心喪 포함)을 모두 마치고 관례(冠禮)도 마쳤지만 실성(失性)할 정도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불안심리를 억제치 못하던 차에 강남의 봉은사(奉恩寺)에 가서 불서(佛書)를 읽고 인생의 ‘생사설(生死說)’에 마음이 끌려 금강산에 입산(入山)해서 불교에 귀의하여 철학적으로 심층연구하여 ‘모친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결국은 효를 위하여 금강산에 입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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