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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율곡학연구 율곡학연구 제36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71 - 20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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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자(字)가 무숙(茂叔), 호(號)가 염계(濂溪)로, 호남성(湖南省) 영주시(永州市) 도현(道縣)에서 태어났으며, 복건성(福建省) 남안(南安)에서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1107) 형제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만년에는 강서성(江西省) 구강(九江)에 살다가 여산(廬山) 아래에 묻혔다. 중국사상사에서 그는 ‘리학개산(理學開山)’, ‘도학종주(道學宗主)’로 일컬어진다. 이 때문에 “공맹(孔孟) 이래 이 노인을 추존함에 있어 정주(程朱) 위로 다시 누가 있겠는가”라고 칭송받았다. 주렴계의 유적・유물은 주로 송대 이후에 간행된 저작물과 염계서원(濂溪書院), 역대의 석각비기(石刻碑記), 주염계상(周濂溪像), 「태극도설(太極圖說)」 등이 있으며, 이외에 마애석각(摩崖石刻: 자연 암석에 새겨진 글자・문양) 문헌 즉 ‘주렴계수서진적(周濂溪手書眞蹟)’이 있는데 이것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 염계서원의 석각활비(石刻活碑)는 오랜 세월로 인하여 자연풍화에 의한 파손이 심하여 현존하는 것이 매우 드물지만, 주렴계의 석각수적(石刻手蹟)은 모두 마애형태(摩崖形態)로 내려와서 보존 될 수 있었는데, 진귀한 성리학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주렴계의 서체는 안진경체(顔眞卿體)이고 현존하는 마애석각은 모두 주염계 선생의 친필이라 할 수 있다. 청대 금석학자로 유명한 왕영(王昶, 1725-1806)은 ‘주자유서명(周子有書名)’이라고 하여, 주렴계가 서예 실력이 대단히 뛰어났음을 말하였다. 현존하는 여러 제각(題刻) 중에 치평(治平) 3년(1066)의 <영릉조양암제각(零陵朝陽巖題刻)>이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치평 3년의 <영릉담암제각(零陵澹巖題刻)>은 글씨를 가장 엄정하게 썼다. 요컨대 이러한 제각(題刻)들은 주렴계가 친히 쓴 것으로 진적(眞蹟)이며, 선철(先哲)을 상상하는데 의지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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