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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0권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 - 4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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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골 출신의 明朗은 善德王代에 入唐해 밀교를 습득하여 文武王代 四天王寺 창건에 깊이 관여했다. 그 과정에서 명랑은 문무왕대에 시중을 역임한 김천존의 추천을 받았다. 밀교는 본래 인도의 토착신앙에서 발생했지만 중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지역적 특수성이 정화되면서 보편성을 띠는 불교주술을 내세웠다. 밀교가 지닌 성격은 중대왕실이 신라 토착적인 사조를 강조하기보다는 보편성을 가지는 儒敎나 佛敎를 도입하는 한화정책에 부합될 수 있었다. 밀교승려였던 명랑은 외삼촌인 자장과는 달리 중대왕실과 정치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중대왕실의 상징적인 사찰인 사천왕사의 창건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었다. 명랑의 밀교사상은 文豆婁法으로 나타났다. 문두루법은 『灌頂經』에 의거한 것으로 圓木에 5방신의 이름을 적어 놓아 邪魔를 쫓는 밀교주술이다. 명랑은 『관정경』을 근거로 5방신상을 세우면서 密壇을 만들었다. 문두루법은 중생의 교화와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보편적인 불교주술이었다. 명랑은 선덕왕릉 아래에 사천왕사를 창건하면서 사천왕신앙을 내세웠다. 사천왕신앙은 보편적인 호국신앙의 하나로 『金光明經』을 근거로 한다. 명랑은 『금광명경』에 관심을 갖았다. 한편 문두루법이 신라 토착신앙의 신성지인 신유림에서 이뤄지고 사천왕사의 건립으로 이어지면서 명랑의 사천왕신앙은 신라 토착신앙을 융섭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밀교의 신앙은 토착신앙을 포용해 보편적인 불교신앙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의 토착신앙과 대립할 여지가 있었다. 명랑보다 앞서 활동한 密本은 토착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法惕과 대립했다. 또 명랑 이후에 활동한 惠通도 機張山의 熊神이 된 毒龍과 대립관계에 있었다. 다만 밀본에게서 강조된 것이 토착신앙을 제압하는 것이라면, 혜통의 경우에서 그것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명랑이 신유림에 밀단을 만든 것은 분명 토착신앙을 대치하는 성격을 지닌 것이지만, 토착신앙을 제압하는 모습이 강조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점에서 명랑의 밀교신앙과 밀본·혜통의 그것이 차이를 보인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신분이나 사회적 위치, 그리고 사상적 경향과 관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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