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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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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479 - 544 (6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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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영․정조 이후 지속적인 수치 논의가 있기도 했고, 간헐적으로 수리가 있었던 檀君陵의 수축은 일제강점기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전개된다. 이 글에서는 이 시기 단군릉수축운동의 전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그 의미를 단군민족주의라는 일방의 검토만으로도 충분한지의 문제를 생각하기로 한다. 단지 동아일보에서 전개한 위인 선양 및 유적보존운동 차원이나, 대종교의 측면이 아니라, 이 시기가 식민지사회였음을 전제하고 그 상황 속에서 단군릉 수축을 위한 일련의 캠패인이 지니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이 시기 단군릉에 대해서는 衣履之葬과 嗣君之陵으로서의 이해가 있었다. 1930년대 단군릉수축운동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18세기말 이후 복수의 단군묘 존재를 확대하여 단군조선의 시조묘로서 단군릉과 함께 다수의 단군조선 및 후조선 왕릉의 존재를 언급한 張道斌의 이해를 주목할 것이다. 아울러 강동지역민을 중심으로 가시화된 단군릉수축운동의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어 강동 유림→壇君墓守護契→檀君陵修築期成會→江東鄕約․檀君陵修築期成會라는 조직의 변화와 뒷받침이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수축운동을 주도하던 강동군에서 친일 유림이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계와 향약을 적극 이용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 이 시기 동아일보에서 전개한 전조선인의 참여 유도를 위한 단군릉수축공사 성금운동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동아일보의 단군에 대한 표기가 ‘壇君’과 ‘檀君’을 넘나들고 있음을 최남선의 「壇君論」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그 같은 변화와 단군릉수축운동의 관계를 추측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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