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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3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99 - 142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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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 기사에는 倭 사료가 50여 건 실려 있다. 이들 왜 기사는 광개토왕비가 발견된 이후 더욱 주목 받게 되었다. 그것은 이들 기사가 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倭(軍) 활동과 부합되는가 어떤가를 검토해보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는 신라본기의 왜는 왜국 군대가 바다를 건너 수시로 신라를 침범한 세력이라 한 데 반해, 어떤이는 그들을 다만 계절풍을 이용한 해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신라본기의 왜 기사를 일별해보면 이들 사료는 크게 네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왜에 대한 호감이나 동경을 가지면서, 먼 곳에 있는 이상향 정도로 보아 신라의 왕이나 대신이 왜에서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왕의 善政・德治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왜군에 대한 방어, 토벌에 관한 기사다. 셋째는 단순한 침범이나 약탈적 성격의 왜인・왜군이다. 네 번째는 외교나 사신왕래에 대한 내용이다. 이러한 倭(使)는 백제본기에도 등장한다. 두 번째 부류는 ‘쓰여진 역사’가 통치의 본보기가 된다는 점에서, 세 번째 부류는 국방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모두 역사를 쓰는 의도가 뚜렷이 보이지만 사실여부를 확인할 방도는 없다. 이들 네 부류에서 바다 건너 일본열도에서 온 세력이 분명한 것은 네 번째뿐이다. 그것도 야마토정권의 통일세력이 나오기 전의 기사이므로 일본열도의 지방정권 특히 九州의 세력이 주요 대상이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신라 상대의 왜 사료는 소지왕 22년(500) 이후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대신 가야 사료가 자주 나오는 등 왜・가야 기사는 시대별로 단락을 지어 있다. 이에 왜와 가야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성이 있어 보인다. 앞에서 보았듯이 다소 막연했던 倭가 점차 분명해지자 그 가운데 일부는 가야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의 왜 사료를 이해할 때 참고가 되는 것은 말갈 사료다. 왜나 말갈 모두 국가 단계나 조직까지는 이르지 못한 집단으로서 막연히 부른 낮춤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한반도 중부에 사는 무리를 ‘말갈’이라 써놓았고, 동남부의 집단을 ‘왜’라 하였다. 『삼국사기』의 대외기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글쓴이 김부식과 그 시대를 알아야 한다. 김부식 일파는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금나라에 사대의 예를 취하는 것으로 고려의 외교 노선을 결정하였다. 오랑캐나라에 사대하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사상의 경험/기억으로서 과거 신라 또한 왜에 대해서 그렇게 하였고, 그럼에도 결국 삼국을 통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역사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 『삼국사기』를 찬술하게 된 배경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삼국사기』에는 왜와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실려 있는데 신라와 백제에서 건너 간 왕족이나 대신을 ‘(人)質’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들 기사가 의거한 원전 어디에도 ‘質’이란 표현은 없다. 이렇게 縮小史觀/패배주의적 바탕에서 자의적으로 편찬한 역사책을 광개토왕비를 이해하는 보조자료로 삼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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