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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양훈 (대성동고분박물관)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3집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 - 32 (32page)
DOI
10.52271/PKHS.2022.0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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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기사 중 가야관계기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초기기사의 가야관계기사는 신라·고려인의 관점인 기록이며, 관련된 전거자료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신라-가야관계 동향을 단일한 시각에서 살펴보는데 한계가 있다. 이 문제는 초기기사의 근거자료 즉 전승기록이 그나마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 주체를 중점으로 검토하고, 당대 기록인 『삼국지 「위서동이전」 등 각종 문헌자료와 고고자료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첫째, 「신라본기」 혁거세 19년의 변한은 신라본기 찬자가 하나의 國으로 인식하였고, 혁거세 38년 마한왕과 호공의 대화 속의 변한은 후한서의 삼한관을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초기기사의 황산진은 현재 경남 양산시 낙동강변이며, 가락국과 신라가 황산강을 두고 대치한 것은 5세기 말~6세기 전반이다. 한편 1~3세기 가소성·마두성 그리고 가소성과 인접한 남변은 언양으로 비정되며, 초기기사의 가야는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기록된 변진접도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파사이사금 23년조 기사는 가락국왕의 정치적 위세를 위서동이전의 “변한왕”, 대성동 29호분의 금동관과 연관하여 3세기 후반의 사건으로 추정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라본기」 초기기사 이해방식
Ⅲ. 가야관계기사 검토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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