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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30권 제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07 - 33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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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에도시대 쇄국정책으로 서구열강의 개항요구에 반대하였으나 미국과 1854년 미․일화친조약,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으로, 조선도 병인년과 신미년의 두 양요에 강력히 항거하여 물리치기는 하였으나 1875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朝日守護條規에 의해 개항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항하는 과정에서 조선과 일본이 斥外의 입장은 같았으나 개방 후 개화의 입장과 서양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선은 華夷적 차원에서 서양을 인식하여 유학자 중 대부분이 中華 중심의 문화를 崇好하고 華夷的 思考로 인하여 쇄국과 전수의 반개화적 논리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에 운양호 사건 이전에는 개항여부에 대하여 戰守派와 交流派, 운양호 사건 이후에는 개화에 있어 守舊派와 開化派의 갈등으로 甲論乙駁하였지만 戰守입장인 수구파의 세가 훨씬 강하게 나타남으로써 양이에 대항으로 맞섰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과 달리, 메이지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양의 기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이렇게 하여 모아진 자본을 토대로 군사력을 크게 신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華夷論的 차원에서 서양을 인식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화서 이항로며, 이 뜻을 이어받아 계승한 이가 의암 유인석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의암 유인석의 시를 통하여 당시의 교화 또는 개화파 논리에 대하여 우려하고 그의 서양관을 화이적 관점에서 알아 본 것으로 抄記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암은 왜양식의 개화현상을 보면서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 「今曰維新守舊」 등 10수의 시에서 개화로 인해 우리 생활에 스며드는 서양문물에 대한 부당함을 반박하고 있다. 둘째, 그의 시에 서양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洋曆二首」 등 9수의 시에서 서양의 책력, 종교, 과학 등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짙다. 또 이러한 내용들이 그가 지은 「宇宙問答」에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시와 더불어 의암의 서양인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의암은 倭洋으로 개화되는 현상을 우려하고 서양에 대하여 화이적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그와 뜻을 같이하는 수구적 유림들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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