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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92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39 - 27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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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입헌제 도입 논의는 에도시대 말기부터 시작되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메이지 신정부는 1870~80년대에 활발히 전개된 민간의 ‘자유민권운동’에 대항하면서 점진적으로 입헌체제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정부 내외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국가체제구상의 대립, 그리고 ‘1881년 정변’을 통한 정권의 보수화를 거쳐 국가체제개혁 노선이 정해졌고 1880년대 후반 정부의 주도로 근대입헌체제는 구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메이지정부 유력자들의 서양체험이다. 의회 개설과 입헌정치의 실시를 앞둔 1880년대 일본에서는 구미의 입헌정치를 직접 배우고 체험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는 움직임이 붐을 이루었다.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국가건설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나서는 일종의 ‘지식순례’ 형태를 띠었는데 직접적인 계기는 1882년부터 1883년에 걸친 이토 히로부미의 입헌제도조사였다. 이후 그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정치엘리트들의 유럽행이 줄을 이었다. 본고는 이러한 ‘지식순례’ 가운데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제2차 유럽시찰에 주목하여 그의 서양체험이 이토의 조사와 비교해 근대 일본의 입헌체제 수립과정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검토한 것이다. 야마가타는 이토의 경우에 비해 짧은 일정에 구미 주요 국가를 차례로 순방하면서 입헌정치의 실태를 견문하고 지방, 군사제도를 충실히 조사, 시찰했다. 그는 주로 내무성 및 지방관청, 경찰서 등을 찾았고 육군학교, 무기제조소, 포대 등 군사시설을 시찰했다. 야마가타와 이토의 시찰은 입헌정치 실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공통된 입장에서 이루어진 서양체험이지만 입헌정치에 대한 양자의 인식과 태도는 상반된다. 이토는 서양과 일본의 정치적 토양이 상이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유럽시찰을 통해 입헌정치 실시에 자신감을 갖고 국가체제개혁에 몰두해 ‘제국헌법’ 제정을 주도하였다. 이와 달리 야마가타는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바라보며 입헌정치의 실시에 우려를 갖고 있었고,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입헌정치 실태를 체험하며 의회정치, 정당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하였다. 이러한 서양체험 결과를 바탕으로 야마가타는 이후 일관되게 보수적, 전제적인 입장에서 입헌정치에 대응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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