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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58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09 - 13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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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내외에서 청대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연구가 확대되는 가운데 청대 중기 즉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새로운 시각과 관련하여 청대 중엽에 서북사지학연구가 크게 확대되었다는 사실과 그 의미를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본고에서는 그전제 작업으로서 배경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요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18세기 중엽 신강정복으로 중국의 영토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이에 고무된 만주족 지배층은 적극적으로 그 것을 역사상 유례없는 대일통의 위업으로 강조하며 대내적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가운데 대규모의 관련 편찬사업이 추진되었다. 정복과정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평정준가르방략󰡕 외에 신강지역 이해를 위한 󰡔서역도지󰡕, 󰡔서역동문지󰡕가 편찬되었고, 나아가 신강지역을 중국의 영역으로 새롭게 확정한 「건륭내부여도」, 󰡔건륭일통지󰡕 등도 간행되었다. 이에 따라 종전에는 禁區였다고 할 수있는 청대사와 변경문제에 대한 한인 관료 지식인층의 관심과 지식도 점차 확대되고 나아가 현지의 사정에 관한 기행문들도 늘어나면서, 청조의 위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건륭제는 유관 서적편찬사업과 관련하여 좀 더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청조중국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황제 자신이 최종 재정권을 행사하여 민간 야사나 사사를 관사로흡수하고자 시도하는 가운데 충의의 관점에서 명청교체기의 역사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며 사가법등 명조 순절자를 포상하고 󰡔승조순절제신록󰡕을 간행케 하였다. 그 과정에서 건륭제는 명의 멸망시기를 이자성군에의한 북경함락이 아니라 청조에 의해 남명의 복왕이 사로잡힌 순치 2년으로 설정하며, 사실상 명청교체를 천명에 따른 역성혁명으로 선언하였다. 이후 󰡔사고전서󰡕 편찬 과정에서 역대왕조의 정통문제가 부각되자, 건륭제는 대일통의 관점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며 요 금은 중원을 장악하지 못했으나 원은 ‘중화의 주’가 되어 송의정통을 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청조 중국지배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당당하게 주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건륭 말년에 들어 그 간 응축되었던 문제들이 다방면에서 분출하면서 심각한 정치 사회적 혼란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백련교난, 묘족의 난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청조체제가 자칫하면 급전직하 막다른 붕괴의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륭제 사후 이른바 가경신정이 추진되면서 대대적인 인사개혁과함께 군기처 내무부 등 핵심권력 기구의 정비가 진행되고, 언로개방의 상유가 거듭되는 가운데 중하위 한인관료와 사인층의 정치적 참여와 활동영역의 확대가 현저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8세기에 인구가 급증하게 됨에 따라 과거를 준비하는 한인 지식인들도 크게 늘어 경쟁은 더 치열해 지며 인재적체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중앙정부 주도의 대규모 문화편찬사업이 어느 정도 그 숨통을 열어 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치밀한 분석과 실증을 중시하는 고증학이 번창하게 되었는데, 가경신정기에 지방관들과 신사층의 활동 공간이 확대되게 됨에 따라 지방지 편찬등 지역적 문화사업도 활성화되면서 한인 사인들의 동원이 확대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관료기구 하층 또는 외연의 한인 지식인들의 현실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개입이 확대되면서 증폭되는 현실적 위기의 근원과 해결책을 탐색하고자 하는 경세적 학풍이 특히 경학을 현실문제와 관련하여 연구하고자 하는 금문공양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발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한인 지식인 관료들의 현실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이 본격화 하고,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범위와 만주족 정권의 역할 등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확대되면서 가도함 시기에 들어 신강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의 역사 지리에 대한 연구가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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