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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화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7집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333 - 366 (34page)
DOI
10.52271/PKHS.2023.12.127.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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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중국을 상징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변발’일 것이다. 고등학교 세계사나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도 청조(淸朝)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변발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변발은 청조 중국을 고찰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청대 시행된 변발령이 국가통합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 그리고 이것이 국제관계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다루고 자 한다.
1644년 청조 입관 후에는 변발을 새로이 정복한 한족들에게 전면적으로 강제하였다. 그 뒤 청조에게 도전한 중요한 세력으로는 대만의 정씨세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청조에게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자신들에게 변발을 강요하지 말고 축발 유지를 내걸었다는 점이다. 청조의 황제, 특히 옹정제는 만한일가(滿漢一家)를 내세우면서 민족적 정체성에 타격을 주고, 유교적 화이관보다 군주에 충성을 바치느냐의 여부로 치환해 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유교적 인(仁)을 한족인가 아닌가로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 인 (仁)을 군주에 대한 충(忠)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군주에 대한 충성이야 말로 화(華)의 기준이 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거꾸로 군주에 대한 충(忠)을 표현하는 변발이야 말로 화(華)의 풍속이 되는 셈이다. 옹정제 시기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제는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들까지도 변발을 강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청초 이래의 청조화 정책을 통하여, 건륭제 시기가 되면서 이제 한족들까지 변발은 영혼이 머무는 장소가 되었고,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상징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변발은 청조의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만큼, 청조에 대해서 저항하는 세력 역시 이를 이용하였다. 변발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청조 통치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문화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도광연간에 일어난 종인걸의 난에서는 장발을 통하여 청조에 대한 저항을 표시하였고, 이러한 움직임은 태평천국 시기에 그 절정에 달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입관 전후의 변발령
Ⅲ. 대만 정씨세력과 변발령
IV. 만한일가와 변발령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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