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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41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83 - 11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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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에는 양인개병제에 따라 양반도 군역의 의무를 져야했다. 그런데 양반들은 여러 방법으로 군역의 의무를 피하였고, 또 갑사 등 무관 병종에 들어가 의무군역을 면제받고 관직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켰다. 조선전기에 갑사는 최정예 군종(軍種)으로 주로 양반들이 입속(入屬)하였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 갑사에 대한 대우가 열악해지면서 점차 양반들은 갑사 입속을 기피하였다. 양반들은 한유(閑遊)하거나 보다 더 대접받는 유학공부로 돌아서고 있었다. 당시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던 서원이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후 군역은 일반 양인들만 지는 양역(良役)으로 변질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동안 조선 정부는 계속되는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중앙군영을 잇달아 설치하여 중앙 5군영제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5군영이 설립되었어도 조선전기 5위제 하의 의무군인의 군액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이에 군액은 2배로 증가하게 되어 양역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많은 관료 지식인들은 양역 문제의 발생 원인을 양반층의 군역 이탈로 보았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조선후기에 들어와 양반충군론이 대두하게 된다. 양반충군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한 인물은 숙종대의 윤휴였다. 윤휴는 북벌을 이루기 위해 양반과 서얼을 함께 총부(摠府)에 소속시켜 군인으로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다시 그는 만과(萬科)의 시행을 주장하였고, 또 호포론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윤휴의 주장에 대해 조정 대신과 양반들은 대대적으로 저항하였다. 윤휴가 경신환국으로 제거된 이후, 양반충군론을 다시 들고 나온 사람은 박세채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양반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특권을 누리면서 군역의 의무는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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