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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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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3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79 - 31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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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상은 충남 예산 출신으로 부친 신학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형성했다. 신현상은 당진 출신 최석영의 권유를 받고 1926년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신현상은 상해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백정기․유기석․이을규․이정규․정화암 등과 교유하며 아나키즘을 수용했다. 그의 상해생활은 아나키즘 수용과 독립운동자금의 필요성을 깨닫는 시기였고,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29년 봄 국내로 돌아왔다. 신현상의 귀국은 유기석 때문이었다. 유기석은 신현상에게 국내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독립운동은 고사하고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신현상은 국내로 돌아온 후 동지들을 규합하며 자금모집을 추진했으며, 호서은행에서 자금을 탈취했다. 호서은행은 1913년 충남 예산에서 설립된 은행으로 당진․예산 일대에서 미곡상을 대상으로 신용거래를 하고 있었다. 신현상은 호서은행의 이러한 신용거래를 이용했다. 먼저 인천기선주식회사 인장과 선하증권을 위조해 어음을 발행했고, 1930년 3월 호서은행에서 어음을 할인 받아 58,000원을 인출했다. 신현상은 국내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유기석과 연락을 취하며 활동했다. 따라서 자금 탈취 후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던 유기석을 찾아갔다. 신현상과 유기석은 탈취한 자금을 의열투쟁에 사용하고자 했다. 신현상은 천진에 있는 일본영사관을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구입했고, 유기석은 상해에서 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했다. 신현상과 유기석은 의열투쟁을 준비하면서 無政府主義者代表者會議도 개최했다. 아나키스트들을 소집해 탈취한 자금으로 새로운 투쟁방략을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대표자회의는 만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민족해방운동기지 건설지원과 중국 관내에서 분과별로 활동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일본영사관과 결탁한 중국 경찰의 습격을 받아 회의 참석자 대부분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북경시에 근무하던 유기석의 노력으로 모두 풀려났지만 신현상과 최석영은 국내로 송환되어 옥고를 치렀다. 호서은행 사건은 독립운동에 사용할 자금을 탈취한 사건이다. 독립운동에서 자금탈취는 수없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호서은행 사건이 주목되는 것은 재중국 조선인 아나키즘운동에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호서은행 사건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들이 투쟁방략을 협의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남화한인청년연맹이 조직되는 배경을 제공했다. 남화한인청년연맹은 1930년대 재중국 조선인 아나키즘운동의 대표적 단체가 되었으며 중국 관내에서 전개된 의열투쟁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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