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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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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41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7 - 3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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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경상북도 김산·개령·지례의 동학 포교와 동학농민운동과 이 지역 동학의 특성을 규명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김천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에 대해서는 신영우와 이이화 등의 연구에 의하여 김천시의 중심지인 김산군의 동학조직과 접주, 동학농민군의 기포와 활동 등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현재의 김천에 속하는 당시의 개령현과 지례현 등지의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아울러 동학농민운동 이전 김산군, 개령현, 지례현의 동학 수용과 동학 조직, 동학농민운동 이후 이 지역 출신동학인의 동향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이 문제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지역에 동학이 전파된 시기와 배경과 이 지역의 동학 지도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둘째 동학농민운동기 이 지역의 동학농민군의 기포 배경과 동학농민군의 활동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셋째 동학농민운동기 이 지역 출신 인물의 희생과 동학농민운동 이후 이 지역 출신 동학인의 동향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 지역 동학인의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지역에 동학이 전파된 것은 최제우가 활동하던 1860년대 초였으며, 최시형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발간이 이루어지고 질병이 만연하고 흉년이 들었던 1880년대 초중반부터 입교자가 늘었으며, 그 배경으로는 피병이나 목숨 부지를 들 수 있다. 둘째, 1894년 8월 지대와 세금을 낮추고,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장한 충경포 대접주인 임규호, 상공포 대접주인 이관영 등의 명령에 의해 기포되었으며, 1894년 9월 중순 최시형의 기포령으로 이 지역의 동학농민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셋째, 그렇지만 이 지역 동학농민군은 음력 10월 1일 관군 및 일본군의 공격으로 크게 패배하였으며, 또한 대구 남영병(南營兵)의 수포(搜捕) 활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넷째, 동학농민운동 후 이 지역 동학인들은 의병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1900년 경 대구의 서정만을 따라『 정감록』 상 십승지지 하나인 속리산에 대거 입산하였다. 이들의 성향은 보수적인 경향을 띠었는데, 그 근거로 이들이 갑진개화운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은 점, 일제강점기 김천지역에 천도교구가 설립되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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