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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93 - 311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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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장은 인도에서 기원하여 장구한 세월동안 변천을 거듭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달되었고 집대성되어 그 꽃을 활짝 피웠다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불상에 사리를 봉안하는 의식이 굽타시대에 기원하여 팔라시대부터 유행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중국 당나라때 약간 받아드렸다고 생각되지만 북송때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때 수용되었는데 그 초기에는 탑사리를 봉안하는 방식이 불상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766년 석남암수 비로자나불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불상대좌의 중대석에 사리호를 안치하였는데 탑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봉안하는 방식대로 사리호를 안치한 것이다. 탑식으로 말하면 이 불상은 무구정광불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상 복장 안에 조상경에 의한 불복장이 정식으로 봉안된 것은 조상경과 의궤3경이 번역된 후인 1200년 전후(1150-1200년 사이)부터 불상에 불복장품을 안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개운사 불상, 개심사 불상, 봉림사 불상, 수국사 불상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조성되어 불복장을 처음 안치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 초기까지는 사리 위주로 8엽통형 사리기와 일부 5약, 5향, 5곡 등과 함께 경전, 다라니 위주로 불복장을 안치하는 방식이었다. 후령통에 5보병(5약, 5곡, 5향, 5보, 5황)을 안치하는 조상경(합부) 의식대로 불복장품을 안치하는 후령통식 불복장은 1575년 3경 합부가 이루어진 이후부터 유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초기의 8엽통식 후령합 형식이 공존하다가 순수한 후령통식으로 변한 것은 1650년 전후로 파악되며, 18세기부터는 순수한 문자 후령통도 유행하고 있어서 불복장은 다양하게 변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후령통식의 불복장의식의 변천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예로써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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