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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아연 (국립중앙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미술사 제60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97 - 22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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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회양산에 위치한 봉암사(鳳巖寺)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한 점이 있다. 이 불상은 복장발원문을 통해 분명한 조성과 중수시기, 조성 주체와 조각승 및 발원 참여자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주목된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이 불상은 순회세자의 비인 덕빈 윤씨가 주요 발원자이고, 비구니 박씨와 윤씨가 실질적 주체자로 활약한 것으로 보았다. 봉암사 불상 조성 불사로 덕빈 윤씨는 부모와 남편의 극락왕생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을 것이며, 비구니 박씨와 윤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평생 불교에 의지하며 외로운 삶을 살았던 덕빈 윤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불사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불상을 봉안한 향로전은 덕빈 윤씨를 위한 기도처의 역할을 했을 것이며, 불상은 원불(願佛)로 제작된 것이라 추정된다. 16세기는 왕실이나 고위 관료층의 후원이 어려워지면서 지방 관료나 승려, 일반민이 불상 조성 불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봉암사 불상의 발원 대상이 덕빈 윤씨라는 점은 불상이 왕실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상 조성에 지방 관리, 승려, 일반민 등이 시주자로 함께 참여했다는 점은 16세기의 확대된 불사 후원 형태도 보이고 있다. 한편 뛰어난 실력을 갖춘 조각승과 화사를 초청해서 불상과 불화를 조성해 봉암사 향로전에 봉안하고 점안법회를 열었다는 점은 당시 상당히 큰 불사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왕실에서 발원한 불사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봉암사 불상은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는 불교조각 중 조선 전기의 마지막 왕실 발원 불교조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봉암사 불상은 전체적인 비례나 각 부분의 특징에서 16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1586년이라는 조성 기록과 양식적으로 일치하며, 분명한 조성시기가 확인되는 조선 전기 불교조각 기준작으로서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조성발원문과 개금발원문을 통해서 16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조각승 및 조성 참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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