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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45 - 26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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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용은 행적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작가정신이 뚜렷한 민화가다. 흔히 민화를 ‘본그림’이라고 하는데,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러한 시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본그림은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민화에 대한 인식이다. 그에 대해 기록으로 전하는 내용만 보더라도, 그의 작품이 매우 개성적이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권위에 타협하지 않고 뻔한 주제를 다루지 아니하며,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과감하게 표출하는 것이 진정한 민화의 정신이라 하겠다. 장천용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미천한 출신으로, 간혹 관청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퉁소를 잘 불고 노래도 잘했다. 그런데 그의 행적은 괴팍하다고 할 만큼 기이했고 무엇보다 자의식이 강했다. 권력에 맞설 만큼 배짱도 두둑하고 묘향산, 금강산 들을 떠돌 만큼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으며, 손을 자를지언정 맘에 맞지 않은 그림은 절대 그려주지 않은 정도였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장천용은 작품세계도 평범치 않고 기이했다. 상식을 벗어난 내용에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주조를 이루었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화풍은 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후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해주백자에서도 전해져 ‘해주양식’이라고 부를 만큼 지역적 전통을 이루었다. 장천용의 기행은 개인적인 성향이 크지만,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자의식의 발현이라는 측면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명국과 최북은 궁중 화원이지만, 천용자는 무명화가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실학자 정약용에 의해 무명화가의 기이한 행적이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 시대적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장천용의 억압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과 강렬하고 개성적인 작품을 통해 18세기 후반 활약한 민화가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민화가의 자유분방하고 표현주의적인 화풍에 대한 일면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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