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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5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29 - 25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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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왕조 내내 강력한 억불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일부 왕과 비빈ㆍ대군ㆍ군ㆍ공주ㆍ옹주ㆍ종친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왕실발원 불사가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궁궐 안에서는 文昭殿 佛堂이 祖宗의 원찰로서 왕실불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왕비와 대비, 후궁 등 왕실의 여성들은 왕실의 안녕과 망자의 추선공덕을 위해 불사를 하거나, 왕과 대군의 사후 淨業院과 慈壽宮 등 尼寺을 중심으로 선왕과 대군의 명복을 빌었다. 지속적인 불교탄압의 분위기 속에서 일부 왕실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초기의 불사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文定王后(1501~1565)와 普雨大師(1509~1565)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많은 사찰들이 중창 또는 중수되었으며 이에 따라 불교미술이 새롭게 꽃을 피웠는데, 왕실에서의 불사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왕실 원당[願刹]을 중심으로 불사 후원이 이루어졌다. 이어 조선 말기에는 서울 인근 사찰을 중심으로 왕실 불사가 성행하면서, 조선 말기 불교미술의 양적 성장 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佛事의 財源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고찰한 결과, 조선시대 왕실 재정 중 왕실 구성원의 사유재산으로 이루어진 私財政, 즉 內帑金이라고 알려진 사재정이 왕실후원 불사의 재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초기~중기에는 왕실의 대표적인 私財政 기구였던 內需司를 중심으로 불사후원이 이루어졌으며, 아울러 왕실의 所用을 담당하였던 尙衣院에서도 불사를 후원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문정왕후 때 가장 최고조에 달했던 내수사의 권력은 그 후 점차 약회되어 갔으며 이에 따라 17세기 이후 내수사의 불사후원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대신 조선후기와 말기에는 왕실 구성원들에게 지급된 宮房田을 바탕으로 불사 후원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내수사, 상의원, 궁방 등을 중심으로 한 왕실의 불사 후원은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최고의 장인에 의한 높은 수준의 불교미술을 탄생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宮廷樣式’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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