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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연극학회 한국연극학 한국연극학 제4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11 - 24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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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라캉의 정신분석을 토대로 그가 제시한 도착과 그 구조아래서 <하녀들> 분석을 시도하였다. <하녀들>에 관한 기존 연구에 있어 도착에 관한 부분적 언급은 있었지만 구체화된 개념적 접근은 미비한데다, 특히 라캉의 정신분석을 전유한 ‘도착(perversion)’과 그 구조 아래에서의 분석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도착은 변태적 성욕으로 해석되어 그것이 곧 작가 쥬네의 ‘비정상적’ 성향과 맞물린 하녀들 간 동성애로 이해되었고, 그리고 가학/피학이라는 일반론적 개념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하녀들의 언어와 행위가 간략하게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틀로는 하녀들의 일련의 언어와 그 행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 글은 하녀들의 무의식이 곧 쥬네의 욕망과 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가운데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하녀들의 놀이 속 자살/살인행각과, 그들 언어에 반복되는 창녀/성녀, 죄인/성인과 같은 단어들이 지니는 의미와 함께, 과연 하녀들이 어떻게 도착적 주체를 재현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라캉의 정신분석에 있어서 도착은 구조적인 심적 범주들 중의 하나이다. 도착구조를 특징짓는 것은 ‘거세부인’이며, ‘주이상스에 대한 의지’이다. 살펴본바와 같이 ‘부인’은 거세의 실현을 부인하는 것인데, 이는 거세를 인지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즉 도착은 상징적인 분리자로서의 아버지를 승인하고 긍정하지만 상징화가 완전하게 확립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렇게 주체화 과정에 있어서 부권기능의 일부인 분리가 일어나지 못한 도착적 주체는 주이상스에 몰두하면서 분리를 수행하려 한다. 이때 주체는 자신을 대상의 지위로 전락시키면서 타자의 주이상스의 도구가 된다. 타자의 절대화와 주체의 도구화는 동전의 양면으로, 결국 도착적 주체는 타자가 향유하고자 하는 ‘의지’의 도구로서 기능하게 된다. ‘주이상스에 대한 의지’란 이렇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대타자의 ‘주이상스에 대한 의지’의 대상-도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도착적 주체에게는 타자의 주이상스를 무대화하는 것에서 주이상스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작동한다. 거세를 부인하지만, 역으로 법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도착은 결국 전복적일 수 없다. 기존질서를 부정하는 듯이 보여도 역설적으로 법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도착의 주요한 구조적 특성인 ‘거세부인’과 ‘주이상스에 대한 의지’는 역설적으로 주이상스에 대한 한계를 부과하고 아버지의 법을 무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마조히즘의 도착적 주체 역시 자신을 호원충동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며, 그것이 대타자의 주이상스에 기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적 주체는 거세를 무대화함으로써, 불안을 경감시키는 분리를 수행함으로써, 향유를 얻는다. 본 연구는 먼저 솔랑쥬와 끌레르가 어떠한 관계 하에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타아, 이상적 자아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사자와는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에로틱한 관계에 놓여있게 된다. 자아와 유사자 사이의 나르시시즘과 공격적 마조히즘의 관계는, 아이가 거울을 통해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완전한 것으로 보고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론 거울상의 완전함이 파편화된 신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끼는, 주체화의 첫 번째 순간인 거울단계로부터 유래한다. 이러한 ‘성애적 공격’이 바로 나르시시즘의 본질적인 특성인 것이다. 타아로서의 솔랑쥬와 끌레르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혐오하고 경쟁하며 공격하는 이유이다. 극 구조의 처음과 끝에 놓인 연극놀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반복되는 마담살해연극놀이는 그들 삶을 살게 해주는 환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욕망의 무대가 쾌락원칙 너머의 고통스런 쾌락인 주이상스로의 접근을 차단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극놀이에서 하녀들의 자살/살인은 스스로 대상-도구가 되어 타자의 주이상스를 위한 희생제의를 펼치는 사도마조히즘의 도착적 행위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 행위는 상징질서를 무화시키는 ‘두 번째 죽음’, 즉 모든 언어적, 기표적 고리와 단절하는 ‘상징적 죽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 대타자의 대상-도구인 집행자/희생자로서 타자의 주이상스를 실현시키는 이들의 행위표출은 안티고네의 행위이행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언어회로의 경계선에 놓인 주체들이며, 대타자의 결여를 부인하고 틀어막으며 아버지 법, 즉 거세의 무대화를 꾀하는 도착적 주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녀들>의 '진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라캉이 언급한 사드의 윤리와 연계된다. 이는 전통적인 윤리가 추구하는 선, 즉 ‘선한 존재(well-being)’에의 위반이며 ‘악한 존재(evil-being)’의 실현이라 하겠다. 본 연구는 라캉이 주목한 “사드 곁의 칸트”를 <하녀들> 텍스트 내의 ‘성인-죄인’과 연계시켜, 결국 ‘아버지’ 내부에, 아버지 은유에, 법 자체에 ‘위반’의 요소가 있듯이, 그리고 법에 주이상스가 내재하는 모순이 있듯이, 법과 향유, 선과 악, 죄인과 성인이 욕망의 맥락에서 차별 없는 기표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종합하여 볼 때 <하녀들>은 쥬네의 무의식을 상연하는 알레고리적 텍스트임을 알 수 있다. 죽음/죄수로서, 거세를 무대화함으로써 주이상스를 얻는 하녀들의 행위는 곧 쥬네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큰 맥에서 <하녀들>은 쥬네의 증상(sinthome)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법이 완전하게 안착되지 못한 쥬네-주체는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즉 예술적인 충동을 통해서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는, 증상을 즐기는 주체인 것이다. 쥬네는 증상의 연극을 통해, 주이상스를 의미화 작용의 상징형성에 결속시킴으로써 스스로 분리/불안을 수행/극복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증상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통하여 상징계에 발을 디디고자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라캉의 도착적 구조로 읽은 <하녀들>이, 결국 쥬네 주체의 증상의 연극이자 악의 연극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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