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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함충범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62권 제3호(통권 제177호)
발행연도
2019.9
수록면
143 - 174 (32page)
DOI
10.31930/JAS.2019.09.62.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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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까지 한국영화사 학계에서는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에 의해 제작된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에 대한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이 있었다. 첫째, 이 작품을 최초의 한국영화로 인정할 수 있는가. 둘째, 이 작품이 공연된 1919년을 한국영화 제작사(製作史)의 출발 기점으로 볼 수 있는가. 이는 연쇄극을 영화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일반적인 문제로 옮겨진 후,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 양식 자체를 인정하거나 연극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도 펼쳐졌다. 아울러, 〈의리적 구토〉에 관한 논의는 (최초의) 기록영화와 극영화 등에 관한 것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띠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는 연쇄극의 혼종성에 주목하다가 그 영화적 성격을 중시하는 것으로 담론의 중심이 이동되어 왔다. 그런데, 〈의리적 구토〉가 공연된 1919년이 한국영화의 출발 기점으로 세워진 것은 ‘한국영화 40년’을 지나 ‘50년’을 3년 앞둔 1966년의 일이었고, 여기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 50년이 지났다. 영화사 연구에서 ‘국가’ 단위 분류화의 적절성과 타당성을 재확인하고, 한국영화사 서술 기준으로서의 ‘민족(성)’이라는 요소의 합리성에 대해 재점검하며, 시대별 주요 사건과 작품에 독립적인 의의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향후 영화사 연구 및 서술의 바람직한 방안을 탐색해 볼 시점이다.

목차

Ⅰ. 들어가며: 초기 한국영화사의 변곡점으로서의 1919년
Ⅱ. 〈의리적 구토〉의 영화사적 의의에 대한 논란
Ⅲ. 기록영화와 극영화로의 논의 확대, 그리고 다시 연쇄극으로
Ⅳ. 정전 재/구축의 양상 및 시대 배경적 요인
Ⅴ. 나오며 : ‘한국영화 100년’을 재고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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