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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세현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해항도시문화교섭학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21호
발행연도
2019.10
수록면
1 - 40 (40page)
DOI
10.35158/cisspc.2019.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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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은 근대적 해군을 재빨리 건설하는 과정에서 인재와 기술문제에 부딪혔다. 일단 거액을 들여 외국인 기술고문을 초빙하거나 신식 수사학당을 만드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서양인들이 기술을 전수하려는 열의가 부족했고 급조한 수사학당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아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중국인 청년들을 유럽에 유학시켜 해군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유럽에 해군유학생을 파견하는 프로젝트는 중국근대 유학생교육의 출발이자 유학제도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체로 양무운동시기 중국유학생들의 최대 목적은 해군건설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873년(동치12년)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1877년(광서3년) 3월에 복주선정학당(福州船政學堂) 졸업생을 중심으로 첫 번째 해군유학생들이 유럽으로 떠났다. 모두 30명의 학생을 파견했는데, 12명이 영국으로 유학 가서 해군항해를 공부했으며, 18명이 프랑스로 유학 가서 선박제조를 공부하였다. 일부 유학생은 광산과 법률 등을 전공하였다. 1880년에 제1차 유학생이 귀국한 후, 1881년에는 제2차 유학생 10명이 다시 떠났다. 1886년에는 제3차 유학생 30명이 떠났다. 유학사업이 여러해 경과하자 북양수사학당(北洋水師學堂)에서도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복주선정학당의 졸업생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복주선정학당과 해군유학계획
Ⅲ. 영국 해군유학생
Ⅳ. 프랑스·독일 해군유학생
Ⅴ. 나오며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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