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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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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72호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3 - 39 (37page)
DOI
10.15299/jk.2019.08.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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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인구문제 해결을 통해 실업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이민을 추진하였다. 1960년대 한국과 남미국가 간의 외교관계가 성립되면서,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남미국가로 해외이민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일어난 1965년 아르헨티나 1차 계약이민을 외무부 문서를 통해 고찰하는 것이다.
한인 이민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을 떠나서 농업으로 성공해보겠다는 희망으로 아르헨티나에 갔지만 농업 대신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아르헨티나 한인사회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측면은 간과되고 농업을 지속하지 못했다는 결과만 주목을 받으며, 농업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민자 때문에 농업이 지속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본고에서는 외무부 문서를 통해서 아르헨티나 1차 계약이민단이 농업을 지속할 수 없었던 원인이 성과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한국정부에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민간인이 기획한 아르헨티나 1차 계약이민을 이민지 확대의 기회로 여기고 현지 상황에 맞지 않은 이민단을 무리하게 송출시켰다. 이민지 확대와 이민자수 증가에 관심이 컸던 정부는 민간인이 기획하고 협상한 결과를 수용하고 이민단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정부가 획득한 이민지 관련 정보는 이민단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결국 1차 계약이민단은 농장에 정착하지 못했다.
2년 동안 경작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1차 이민단은 전원 철수하기까지 정착지에서 농사를 지속하고자 했었다. 경작을 시도하기도 하고 한국정부에 농기계 구입을 청원했던 이들의 노력은 그동안 간과되어 왔다. 이 연구는 아르헨티나 1차 계약이민에서 한국정부의 역할을 드러내고 이민단 각자가 역할을 수행했던 과정에 의미를 둠으로써 1차 계약이민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한국과 아르헨티나 간 계약이민의 배경
3. 1차 계약이민단의 이주와 정착
4.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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