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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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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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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퇴계학논총 퇴계학논총 제33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65 - 9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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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고운 최치원의 말년 행적은 󰡔삼국사기󰡕에 실린 「최치원 열전」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료가 부족하여 충분히 밝혀지지 못했고, 사실과 다르게 인식되어 온 것도 있다.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되었다’는 것은 한갓 전설에 불과하다. 이 글에서는 최치원이 政界를 은퇴하고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간 이후의 삶과 발자취에 대해 고찰하였다. 주요 자료로는 해인사에서 저술한 역대 화엄 고승들의 전기, 특히 󰡔法藏和尙傳󰡕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최치원은 가야산에 들어간 뒤 세속과의 소통의 길을 어느 정도 열어 놓은 상태에서 불교 관계 저술에 힘썼다. 賢俊⋅希朗 등 고승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해인사 시절 그는 華嚴思想에 심취하면서도 세상을 걱정하는 憂患意識을 끝까지 지켰다. 겉모습은 유학자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불교, 특히 화엄의 세계에 심취하였다. 그는 불교의 화엄사상과 유교의 忠君愛國 사상으로 쓰러져 가는 신라를 붙들어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救國과 護國을 위해 저술에 매진하였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저술은 義湘의 전기인 󰡔浮石尊者傳󰡕, 賢首의 전기인 󰡔법장화상전󰡕이었다. 최치원의 말년 행적은 학술, 종교 활동의 연속이었다. 그는 수년 동안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약한 지식인’, ‘가야산 신선’으로 표현되는 최치원의 말년 이제 이미지는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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