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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7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415 - 456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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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극심한 倭寇의 피해를 경험했던 조선의 위정자들은 慶尙右道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경상우도의 방위태세를 확립하였고, 그 지역의 人事도 신중하게 처리했다. 세조는 中樞院副使가 경상 좌⋅우도 절제사와 處置使를 겸직하도록 하여, 경상우도를 중앙과 긴밀하게 연결하여 통치하고자 했다. 그는 경상우도에 처치사외에 감찰관도 따로 파견하여 엄격한 방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1510년에 발생한 삼포왜란은 경상우도 방어 체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삼포왜란으로 防禦廳이 설치되고 경상우도의 경우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 외에 防禦使와 助防將을 두어 대규모 병력 동원과 작전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왕의 임진왜란기 경상우도에 대한 연구는 의병 항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관군의 활동에 대한 검토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92년 6월 이후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경상우도에서 의병 창의를 독려하고, 경상우도 지역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새롭게 임명된 관군 장수들도 방위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전란이 장기화되고 일본군이 남하하여 경상⋅전라도의 해안 지역에 주둔하게 되면서, 김응서와 같은 관군 장수들이 합천 지역에서 방위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명군이 주둔하면서 합천의 군사적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軍陣을 설치해야 할 요해처로 인식되었다. 정유재란기에는 관군 장수인 성주목사 이수일과 고언백⋅성윤문 등이 일본군의 북상을 막기 위해 합천에서 奮戰하였다. 그들과 의병장들의 노력으로 일본군의 북상을 합천에서 차단할 수 있었고, 이후에도 합천은 군사적 거점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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