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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1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13 - 24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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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에서는 만주를 역사적으로 중국의 온전한 영토로 만들고 만주의 핵심인 백두산을 중화문화권 속에 귀속시키기 위해 소위 ‘滿洲(長白山) 主人論’을 주창하고 있다. ‘만주(장백산) 주인론’은 숙신 → 물길 → 읍루 → 말갈 → 여진 →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숙신계 민족들이 장백산을 경외하고 생활터전으로 삼아 형성되었으며, 이들의 왕조가 만주와 그 핵심인 장백산을 관할해왔고 장백산을 숭배하고 祭禮를 지내왔다는 자기 중심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만주와 그 핵심인 장백산의 주인은 숙신계 민족”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내세우는 ‘만주(장백산) 주인론’에서는, 우리 왕조인 고구려와 발해가 백두산을 관할해왔었기 때문에 만주는 우리의 故土이고 백두산은 우리의 聖山이라는 인식, 백두산이 북ㆍ중 국경에 걸쳐 있는 점, 조선 왕조에서도 백두산을 숭배하고 제사지냈다는 사실, 조선 왕조와 백두산의 관련성, 조선 왕조의 백두산 관할 의식 등을 부정한 채 청조만이 백두산을 관할하고 있었다고 하여 주변국을 전혀 의식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일국만의 배타성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조선 왕조 시기 조선인들은 백두산에 대한 특별한 민족적 정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백두산 사방 주위에는 여진족 부락들이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두산은 조선의 세력 범위 내에 없었다.”거나 심지어 “조선 왕조에서는 백두산을 관할하지도 않았고 백두산과의 정서적 관련성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중국학자조차 있다. 또한 일부 중국학자들은 여진족에 앞서 고구려인이 백두산을 숭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면서도 유독 숙신계에게만 백두산 숭배에 대한 역사적 傳承性을 부여한다. 그것은 2000년 전까지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인정하고 교육시킨 중국학계에서 여전히 고구려인을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불편한 심리 상태가 반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보면 중국의 ‘만주(장백산) 주인론’에서는 주변국의 역사 문화적 연원과 정서를 무시하는 ‘중화주의적인 배타적 역사 문화 인식’ 내지 ‘문화영토 제국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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