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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영토해양연구 영토해양연구 제18권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38 - 85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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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지명은 조선 후기 수토관이 주변 도서와 산천의 형상에 의거하여 명명하는 데 지나지 않았으나 근대기에 개척령을 전후해서는 입도자가 늘어남에 따라 마을지명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명을 기록한 문헌을 보면, 기록자마다 들은 대로 옮기다보니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방언을 모르는 일본인이 더 심했다.
지명이 잘못 전해지게 된 원인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음을 빌리거나 뜻을 빌려 지명을 표기할 때 기록자마다 다르게 표기했기 때문이다. 구멍바위를 ‘穴巖’과 ‘孔岩’으로 다르게 표기하거나, ‘구미’와 ‘작지’를 저마다 다르게 표기한 것이 이에 속한다. 둘째, 기록자가 지명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거나 발음의 유사성으로 인해 혼돈을 겪어 달라진 경우이다. 현전하는 지명 오류의 대부분이 이로 인해서인데 일본인에 의해 와전된 경우가 많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玄浦를 玄圃로, 石浦를 石圃로, 鶴浦를 鶴圃로 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셋째, 기록상 혹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글자 수를 줄이거나 두 지명을 하나로 병합한 경우이다. ‘도방청’을 ‘도동’으로, ‘저전동·저전포’를 ‘저동’으로, ‘아륙사’를 ‘사동’으로, ‘통구미동’을 ‘통구동’으로, ‘왜선창’을 ‘창동’으로 바꾼 경우가 이에 속한다. 넷째, 우리말 지명대신 한자지명으로 바꾼 경우이다. ‘대황토구미’와 ‘소황토구미’, ‘골개(谷浦)’ 등을 태하동, 학포동, 남양동으로 바꾼 것이 이에 속한다. 다섯째, 한인의 고유 지명을 일인이 일본식으로 바꾼 경우이다. ‘구미’를 ‘감 (坎)’으로 바꾼 것, 관음도의 이전 명칭인 방패도가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울릉도는 개척 이전부터 일본인의 왕래가 잦았던 만큼 지명에서도 그 영향이 드리워 있다. 그 결과 현전하는 지명이 잘못 전해지거나 원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된 배경에는 일본인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한인에 의해 와전 된 지명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정착했고 해방 후에는 한인에 의해 그대로 답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해방 후에 새로 만들어진 지명도 있다. 조선시대 지명 가운데는 일본인이 명명한 경우가 있고, 일제 강점기의 지명이라 할지라도 조선시대 지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경우가 있으므로 생성연도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지명과 일제 강점기 지명으로 단순 분류하기는 어렵다. 이제 울릉도 지명의 오류가 밝혀진 이상 현재 온라인상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바로 수정되어야 하며, 앞으로 발간된 『울릉군지』에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울릉도 지명의 형성과 변천
Ⅲ. 대한제국기 울릉도 지명의 형성과 변천
Ⅳ. 일제 강점기 울릉도 지명의 와전과 고착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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