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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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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윤해동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한국학 2020 봄호 제43권 제1호 (통권 제158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7 - 4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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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폭력성과 관련하여, 우선 일제 군경의 발포가 자행된 시위 가운데 약 85% 정도의 시위가 폭력적인 시위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발포와 폭력성의 상관성이 매우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3·1운동이 기본적으로 비폭력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열쇠가 숨어 있다. 3·1운동의 폭력시위 대부분은 일제 군경의 시위 진압방식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3·1운동 연구에서 그 동안 거의 완전히 간과되어 온 측면은 바로 비타협적인 불복종 행동에 대한 것이다. 대개 평화운동에서의 불복종 행동은 “선에 대한 협력과 악에 대한 비협력”이라는 도덕적인 원칙에서 출발한다. 조선인들은 불의의 법과 제도에 협력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일본의 지배를 거부하였다. 폭력시위에 대한 미시분석의 과정에서 그런 불복종의 태도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거의 대부분의 시위는 비폭력시위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틀 이상 지속되는 연속시위의 경우, 폭력시위는 대부분 둘째 날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발포 등의 잔인한 진압 방식이 동원되거나 그것이 예상되는 경우에 시위가 폭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발포가 있는 경우에도 비폭력시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3·1운동의 주요시위가 불복종의 가치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비폭력과 불복종 행위를 가로지르며 아름답게 직조되었던 3·1운동은 ‘평화적 혁명’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음 3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인정할 수 있다. 첫째, 3·1운동은 실용적인 운동이었다. 폭력시위의 경우에도 파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둘째, 3·1운동은 도덕적인 운동이었다. 권력의 말살이 아니라, 상대방의 개조를 목적으로 한 운동이었다. 셋째, 3·1운동은 창조적인 운동이었다. 비폭력・불복종운동은 분노를 건설적인 힘으로 전환한다. 3·1운동은 ‘문화를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3·1운동의 힘은 이른바 ‘문화의 힘’이고, 창조적인 힘이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이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혁명적인 운동’이었고, ‘평화적인 혁명’이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시위의 폭력성과 발포
Ⅲ. 비폭력 시위의 조건
Ⅳ. 폭력적 시위와 비폭력·불복종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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