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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新里亮人 (熊本大學)
저널정보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해항도시문화교섭학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22호
발행연도
2020.4
수록면
21 - 46 (26page)
DOI
10.35158/cisspc.2020.04.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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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열도(琉球列島)의 구스쿠(グスク)라 불리는 성새건조물(城塞建造物)에서 도자기, 철기 등과 함께 경질의 도기(陶器)가 출토되는 것은 1950년대부터 알려져 있다. 당시 가마터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그 루트에 대해서는 조선 반도, 일본 열도, 오키나와 본섬 등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으며, 한동안 산지 불명의 상태가 계속되었다. 1983년 도쿠노시마 남부 이센쵸(伊仙町)에서 저수지 개축 공사 중 대량의 도편(陶片)과 목탄(木炭), 소토(焼土, 가마의 일부) 등 가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물이 세트로 발견되면서, 구스쿠에서 출토된 도기의 대부분이 도쿠노시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가마터는 가무이 야키 고가마터군이라 이름 붙여졌고, 이곳에서 생산된 도기는 발견된 지명을 따서 ‘가무이 야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도기 가마의 구조와 생산 기종의 구성에서 규슈(九州) 남부의 중세 요업(窯業) 생산터와의 계통 관계가 거론된 적이 있었지만, 기형(器形), 소성(焼成), 문양(文様) 등 여러 요소가 한반도산 무유도기(無釉陶器)와 유사했다. 때문에 지금은 일본 열도와 한반도 쌍방의 특징을 계승한 ‘남도의 중세 스에키(須恵器)’라는 평가가 정착되었다. 이후 가무이 야키와 고려 도기의 관계를 통해서 류큐 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몇 년간 아마미(奄美) 군도에서는 가무이 야키의 도기 가마터 성립 시기의 취락흔적과 수전흔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도쿠노시마의 취락흔적에서는 가무이 야키가 11세기 전반 무렵의 재지토기와 동반되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들은 중국 도자기와 재지 토기가 포함된 유구면 보다 아래의 퇴적층에서 출토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무이 야키의 성립 시기는 종전보다 50년 정도 오래된 11세기 전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가무이 야키의 출현 시기가 종전보다 약간 이전이라면, 그 성립 계기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필자는 가무이 야키의 도기 가마터 성립 시기를 11세기 중반으로 보고 있으며, 그 성립 계기로 일본 유일의 국제 무역항 하카타(博多)에서 전개된 일송(日宋) 무역과 일려(日麗) 무역을 상정해 왔다. 일려 무역의 기록은 11세기 후반 이후에 확인되기 때문에 가무이 야키 도기 가마터의 성립이 예상보다 오래되었다면 가무이 야키는 일려 무역의 기록 이전에 출현한 것이 된다. 일본의 중세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고로칸(鴻臚館)에서 공적으로 관리된 무역 활동이 전개되었는데, 도쿠노시마의 고려(高麗) 도공(陶工) 초빙도 자유로운 상업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공권력이 관여하여 달성되었을 가능성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목차

Ⅰ. カムィヤキとは
Ⅱ. 窯跡と生産品の特徴
Ⅲ. カムィヤキ研究のあゆみ
Ⅳ. カムィヤキからみた琉球列島と韓半島の交流
参考文献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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