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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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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108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15 - 14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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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行은 사대부 가문의 후손으로 李穡 휘하에서 과거에 급제하였다. 위화도회군 이후 李成桂 세력이 주도하는 사전개혁, 관제개혁, 인사개혁에 함께 참여하였다. 그는 좌주 李穡이나 權近과 교유 관계가 있었으나 개혁에는 입장이 달라 그들의 당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계의 당여가 되지도 않았다. 李行은 요동정벌의 실책을 범한 우왕의 퇴위는 동의하였으나 우왕과 창왕을 고려의 정상적인 국왕으로 생각했으므로 창왕의 폐위와 공양왕의 추대를 비판하였고, 禑昌의 죽음의 배후에 이성계가 있다는 史草를 작성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 史草의 내용이 드러나 유배되었으나 그것은 그가 이성계에 반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는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개국공신 세력과 대립하던 이방원이 군신의리를 강조하며 고려를 위해 절의를 지킨 인물을 등용하면서 다시 진출하였다. 조전절제사로서 趙思義 난을 진압하고, 여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에 사신으로 갔으며, 한양 천도를 앞두고 판한성부사가 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행은 두문동 72현의 하나로서 조선에 出仕하지 않고 은거한 인물로 이해되어 왔으나 그것은 조선후기의 節義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오히려 조선초기의 李行은 절의를 지킨 인물을 등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출한 것으로, 이행의 출사는 절의에 대한 포창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李行의 출사는 조선초기 절의 인식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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