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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재 (전북대)
저널정보
한국프랑스사학회 프랑스사 연구 프랑스사 연구 제44호
발행연도
2021.2
수록면
209 - 239 (31page)
DOI
10.51786/RCHF.2021.02.4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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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이탈리아원정에서 불세출의 전쟁영웅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은 불과 3년여 남짓 후에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권좌에 올랐다. 나폴레옹이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적군의 연파한 그의 혁혁한 전공 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치적을 장식하고 선전하는 그의 탁월한 프로파간다 전술 덕이기도 할 것이다. 이탈리아원정에 뒤이어 이집트 원정에 나선 원정군 총사령관은 총재정부에 보내는 군보고서들뿐만 아니라 자가가 직접 만든 군대 신문들, 여러 정치언론들을 통해 원정군의 치적을 과시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선전을 펼쳤다. 판화와 회화, 메달과 훈장도 ‘국민 영웅’의 이미지메이킹에 한몫을 했다. 언론과 여론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은 무능하고 부패한 총재정부 정치인들과는 대조되는,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고 청렴한 공화파 장군의 이미지였다. 병사들을 이집트 땅에 남긴 채 나폴레옹은 도망치듯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국민 대중은 그를 위기에 처한 조국의 ‘구원자’로 열열이 환영했다. 나폴레옹은 실로 현대식 정치프로파간다 와 이미지메이킹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이탈리아 평원의 ‘승리자’
III. 이집트 사막의 ‘정복자’
IV. ‘구원자’의 귀환
V. 맺음말
참고문헌
Résumé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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