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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영신 (숭실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71호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439 - 48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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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세기 후반 중국의 소그드 석장구 연구사를 통해 대두된 당시 중국 소그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 소그드인들은 사업상의 목적이나 본토의 전란을 피해 본토 소그디아나를 떠나 동쪽으로 이주해서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2세기 이후 중국 본토에까지 진출한 소그드인들은 고대 중국의 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겨놓았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19세기 중반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연구는 2000년 전후 중국 서안과 태원에서 묘지와 석장구가 출토된 6세기 후반 소그드인 묘의 발굴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묘는 벽돌로 쌓은 지하무덤에 석제관곽을 안치하는 방식이었다. 소그디아나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시신을 부정한 것으로 보았으며 부정한 시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물·불·대지 등 신성한 원소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세 번의 견시(sagdid)를 행한 뒤 다크마(dakhma)로 옮겨 새와 개가 시신에서 살을 제거하는 노출(exposure) 과정을 거친다. 육탈된 뼈는 납골기에 담아 지상의 묘당인 나우스에 안치한다.
선행 연구에서는 중국에서 발굴된 6세기 후반 소그드인의 묘제를 소그드인들이 중국 문화에 동화되었거나 한화된 결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소그드인의 정체성 문제는 중국의 시각이 아니라 소그드인의 관점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소그드인의 묘제와 석장구를 재검토하였다. 우선 묘제가 한화의 결과라면 이들의 상장관이 먼저 한화되었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6세기 후반 중국 소그드인의 묘제는 소그디아나 본토에서의 상장관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이었다. 벽돌로 쌓은 무덤과 석장구는 시신이 대지와 접촉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대지의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더구나 벽돌식 지하무덤과 석장구는 전통적인 중국식이 아니라 북조에서 채택한 새로운 방식이었다. 여기에 소그드인 무덤에서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시신을 놓는 남북방향이 아니라 동서방향으로 석장구가 놓여 있었다. 즉, 이주민으로서 중국인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의례를 피하면서도 자신들의 상장관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의 장례를 치렀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소그드인의 묘제는 중국 문화에 ‘동화’되었거나 ‘한화’된 결과라기보다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소그드인의 상장(喪葬) 의례와 납골기
Ⅲ. 중국 소그드인의 상장(喪葬) 풍습과 석장구
Ⅳ. 맺음말: 상장(喪葬) 미술을 통해 본 중국 소그드인의 정체성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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