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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복기대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68집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177 - 209 (33page)
DOI
10.33252/sih.2021.3.6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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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북방 국경선은 함길도 경원부였다. 이 경원부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뜻으로 ‘경원’이라 하였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위치였다고는 하지만 이 지역은 조선, 여진, 명나라의 분쟁지역이었다. 그렇지만 조선은 성지였기 때문에 지켜야 했고, 지키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결국 포기하였다. 그러나 경원부를 포기하면서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자 다시 회복하였다. 그러면서 조선의 국경은 경원부로 공식화 하였다. 그런데 이 경원부의 위치에 대하여 대부분 현재의 두만강 중심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자료를 확인해본 바 경원부는 고려 시대의 공험진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이 공험진은 두만강 건너 700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두만강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현재 두만강으로 국경선을 정한 것은 1909년이다. 그 이전에는 이 두만강이 국경선이 아니었다. 어쩌면 또 다른 두만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연변의 해란강도 하나의 가능성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지금의 두만강으로 조선의 국경선이 확정되었을까? 그것은 1909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가장 먼저 한 사업이 역사를 말살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즉 ‘반도사관’을 만든 것이었다. 이 작업은 결국 모든 한국사는 북으로는 두만강, 서로는 지금의 압록강으로 하여 그 안에 모든 것을 넣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역사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의 국제정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안에 자리잡힌 한국 국경사를 바로 잡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경원부 위치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 전기 경원부 관련 기록의 검토
3. 경원부의 위치 재고찰
4. 경원부와 현재 두만강과의 관계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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