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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선일 (문화재청)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79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77 - 296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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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양 원각사에 소장된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제작한 성수(性修, 性守) 비구에 관한 연구이다. 이 보살상은 2018년 5월에 사찰의 의뢰를 받아 수종(樹種)과 연륜연대(年輪年代) 등을 조사하던 중에 바닥 면에 적힌 조성묵서가 확인되어 조선후기 지장보살상 연구에 기준 작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높이 45㎝의 중소형으로, 민머리의 성문비구형(聲聞比丘形)이다. 지장보살은 상체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불신(佛身)과 따로 제작된 양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보살은 전신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지만,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아 다부진 느낌을 주고, 무릎 높이가 낮고 폭이 넓어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의는 목 뒷부분이 약간 접혀 있고, 양 어깨에는 대의를 걸친 조선후기 전형적인 착의법이다. 다만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대의자락이 목에서 허리로 반원을 그리며 흘러내리지 않은 점은 특이하다. 그리고 한 벌의 대의를 더 걸쳐 보살상 뒤쪽에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흘러내리고, 그 안쪽에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대의자락이 대각선으로 늘어져 있다조성묵서(造成墨書)에 의하면, 순치(順治) 7년인 1650년에 화주(化主) 덕인(德忍)이 발원하여 조각승[畵員] 성수와 경성(敬聖, 敬性)이 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1650년 6월에 화주 덕인이 발원한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전북 유형문화재 216호)을 무염과 같이 제작하였다. 따라서 원각사와 관음사 목조보살좌상은 화주와 작가가 동일하여 아미타삼존상으로 제작되었다가 이후 다른 사찰로 이운했을 가능성이 있다. 성수의 조각승 계보는 각민(-1605-1614-)→행사(-1606- 1648-)→무염(-1633-1656-)→해심(-1633-1654-), 성수(-1633-1674-)→경성(-1648- 1684-)으로 계승되었다. 또한 성수와 해심은 활동 시기와 집단 내 위상 등을 고려하면 사제지간이 아닌 선후배로 보인다. 조각승 성수가 목조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한 사찰에 관한 단서는 남아있지 않지만, 전북 고창과 완주, 전남 영광, 충남 논산 등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현전하는 보살상 2구도 호남의 북부 지역 사찰에서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각승 성수는 1600년 전후에 태어나 1610년대 후반에서 1620년대까지 불상 제작에 보조화승으로 참여하고, 1630년대 전반 조각승 무염이 만든 불상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최소한 1640년대 중반쯤에 수화승으로 불상을 조성했을 것이다. 성수는 1650년에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제작에 수화승으로 참여하고, 1653년 고창 문수사 대웅전과 명부전 불상을 수화승 해심과 같이 제작하였다. 조각승 성수가 만든 불상의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유사한 불상은 제주 본태박물관 목조여래좌상, 보령 중대암 목조보살좌상, 부여 정각사 목조보살좌상 등으로, 이들 불상은 1650년대 무염의 계보에 속한 조각승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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