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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희목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漢文學報 제41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 - 2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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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大訥 盧相益이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시기에 지은 한시를 고찰한 것이다. 金海에서 생장한 그가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기는 그야말로 그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갱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1882년 급제하여 1883년부터 1894년까지의 기간 동안 居喪 중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京官의 신분을 유지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그의 한시 중에서 서울에서의 생활과 교유, 관직 생활에서의 심회 등을 살피려 한다. 그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집을 매입하여 거주했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사들과 교유하였고 詩社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교유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애국적 경향의 志士들이었다. 詩社에서 지어진 詩篇에서 특별한 주제의식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야말로 친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편들은 긴장된 관원 생활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필요한 이완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자신의 심회를 스스로 밝힌 작품들도 상당수 남기고 있다. 국가적 위난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한 것, 大夫로서의 책임감을 밝힌 것, 대부로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 공헌을 해야 할 텐데 도무지 그렇게 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 것, 어려운 상황이지만 임금을 가까이에서 충의로 잘 섬기겠다는 大夫로서의 각오를 드러낸 것들이 있다. 그가 관직생활을 하면서 남긴 시편들에서 내면의식의 변화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데 이는 궁벽한 시골의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그의 배경 때문으로 이해된다. 세도가들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눌의 처신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시문을 통해 뭔가를 표출해 내는 것은 지난한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눌의 서울 생활이 明哲保身으로 점철되었다고 하더라도, 관직에서의 경험은 서간도 망명 시기에 그가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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