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진혁 ((재)세종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11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52 - 193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에서는 2~4세기 포항 흥해 옥성리 일대 목곽묘의 구조와 출토유물 및 부장 양상, 무덤의 입지(이하 이를 통틀어 ‘고분 양상’이라 칭함)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 그에서 간취되는 몇 가지 특징 등을 통해고분 축조집단의 정치적 동향을 일별하고자 하였다. 고분 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3단계로구분 지을 수 있다. I단계는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2/4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A1식의 근방형 목곽묘가 출현하고, (최)상위 계층의 무덤에서는 타 지역의 무덤과 비교했을 많은 양의 무기류가 부장되는 점이 주목된다. 이 단계는 옥성리고분군 축조집단의 성장단계로, 이는 동해안 교통로 상에 위치하여 군사적 요충지로서의중요성에 따라 사로국과의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하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II단계는 3세기 3/4분기에서 4세기 1/4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동혈·이혈주부곽식(E·F식) 목곽묘가A1식 목곽묘를 대체하고 대부광구호·노형토기 등 기존의 전통적인 부장유물이 소멸하며 경주식 노형기대, 양이부호, 종장판갑, 경옥제 곡옥, 궐수형 철모 등 새로운 기종의 유물이 확인된다. 그리고 기존묘역인 옥성리고분군이 그대로 기능하면서 그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마산리고분군과 남성리고분군 등새로운 묘역이 조성되는데 각 묘역에서는 대형묘가 조영되며 남성리고분군이 중심묘역으로 부상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시 사로국의 성장과 관련이 있겠으며 그에 의한 간접지배가 이루어졌거나 그와는달리 옥성리 일대 집단의 자체 성장의 결과로 판단된다. III단계는 4세기 2/4분기로 이후로 III단계의 初까지는 대형묘가 남성리고분군에 한하여 확인되나 4세기3/4분기 이후로는 대형묘의 조영이 중지된다. 더불어 기존 묘역의 옥성리고분군에서는 종래까지 무덤이 조성되어 왔던 고소(高所, 옥성리고분군 ‘나’지구)에 더 이상 무덤이 축조되지 않으며 경주산(계)의신라 전기양식토기가 유행한다. 이러한 점은 옥성리 일대 집단이 경주 사로국에 의해 완전히 복속되었음을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경주의 사로국이 발전하여 진한의 제 소국들을 통합하고 ‘신라’라는 고대국가로 이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