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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낙중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67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36 - 169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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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최근 이루어진 영산강유역권의 마한 사회와 관련된 발굴 조사 성과와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정리하였다. 우선 초창기 한, 마한 조기·전기의 양상을 밝힐 수 있는 2세기 이전의 자료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영산강유역의 마한세력도 동아시아 차원의 교류에 참여하며 성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마한의 성장과 변동은 백제 왕권의 그것과 연동되어 있지만 단지 백제만이 아니라 주변, 특히 왜와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왜계 고분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해양 교류의 관점에서 백제와 왜의 교섭 혹은 교류 과정에서 이 지역 마한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새로운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특정 유물의 성격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원통형토기(분주토기)인데, 고창 왕촌리 유적 원통형토기, 함평 금산리와 영암 내동리 쌍무덤 출토 형상 하니와형 토제품 등을 통해 지역 사회의 네트워크, 왜(九州)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논의할 필요성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방대형 분구의 등장, 금동신발 및 금동관 등 위세품, 그리고 나주 송제리 고분군 등의 고고자료를 통해 백제와 영산강유역 세력의 관계 변화의 과정을 좀 더 촘촘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백제화 과정에서도 여전히 현지세력의 역할이 중요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영산강유역은 초창기 韓부터 후기 마한까지 마한 변천의 전 단계를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양상은 영산강 본류역 뿐만 아니라 고창과 해남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므로 영산강유역권으로 묶어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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