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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6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 - 3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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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감영(全羅監營)의 설치와 확대 시기, 그 내용과 의미 등을 살펴본 것이다. 고려말 1388년 안찰사제(按察使制)를 도관찰출철사제(都觀察黜陟使制)로 개편하면서 전라도에도 도관찰출척사가 임용되기 시작하였다. 고려말 전라도관찰사 본영(本營)은 전라도안찰사영에 이어 전주에 설치되었다. 전라감영의 설치시기는 고려말에서 조선초 과도기를 거쳐 감영제(監營制)가 확립된 태종대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전라감영은 경상감영, 충청감영과 달리 임진왜란 후에도 다른 읍으로 이전하지 않고 조선말까지 전주에 존속되었다. 조선건국 후 감영제는 감사(監司)가 일도(一道)를 순행하며 도정(道政)을 처결하는 행영제(行營制)로 운영되었다. 전라감영도 행영제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전에는 감사의 집무처 선화당(宣化堂)을 비롯하여 별도의 감영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라감사가 전주에 머물 때는 전주객관(全州客官)에 거처하면서 도정을 처결하였다. 감사가 감영에 머물며 도정을 처결하는 유영제(留營制)는 임진왜란 이후 부분적이고 임시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전라감영에서 1652년(효종 3)부터 1664년(현종 5)까지 겸목구임(兼牧久任)을 통한 유영제를 제도화 하기 위한 차원에서 10여 년간 처음으로 시험 운영하였다. 유영제를 전라감영에서 시범 운영한 것은 재정적 여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유영제는 구임제(久任制)·설권제(挈眷制)·겸목제(兼牧制)와 연계되어 있는 체제이다. 1657년(효종 8) 대동미에 영수미(營需米)를 마련하여 물적 기반을 구축하고, 전라감영에서의 시험 운영을 기반으로 1669년(현종 10)에 마침내 양계지역 이남에 이러한 유영제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전라감영은 유영제가 처음 설치된 곳으로 유영제 개편의 선도적 위치에 있었다. 유영제가 되면서 선화당을 비롯하여 감영시설이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전라감영의 관아시설들도 유영제하에서 건립된 것들이다. 전라감영 선화당도 선조 때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전주부 고지도에 등장하는 전라감영은 유영제하의 전라감영이다. 전주는 통일신라 이래 전라도 내지 전북권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라감영은 전주 정체성의 상징적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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