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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인욱 (한남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5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61 - 18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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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宗代 고려는 내내 전쟁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종 18년(1231)부터 고종 46년(1259)까지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 전체가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다. 전주는 북방 세력이 호남지역을 침입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곳임에도, 그간 몽골의 침입에 대한 논의에서 그리 많이 거론되지 않았다. 몽골의 전라도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몽골병이 전주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종 23년이었다. 이때 침입한 몽골병은 전주와 부안 등 전북 서부 지역에 출현하였는데, 군량미 확보를 위한 침투였다고 판단된다. 그 과정에서 전주 인근의 모악산에 위치한 귀신성·금산성·금동성 등을 함락시켰다. 이때는 전북지역을 공격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몽골병은 고종 34년과 40년, 41년 그리고 42년부터 43년에도 전주에 피해를 입혔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는 고종 42년 6월부터 고종 43년 여름까지였다. 이때는 전주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 서신 왕래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많은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이 당시 전라도 공격은 세곡이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재정 및 식량의 부족을 일으켜 고려가 항복을 하게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전쟁이었다. 몽골의 침입이 진행하는 가운데, 고려는 관리들의 수탈로 인한 백성들과의 충돌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고종 39년의 이안사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충돌이었다. 전주의 토호였던 이안사와 이를 제압해야 하는 중앙 관리 간의 개인적인 대립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산성 수축 혹은 보수 과정에서 전주민들에 대한 관리들의 폭정으로 인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다. 이러한 충돌은 비단 전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고려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가 전주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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